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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영철 주범 천안함 피격(被擊) 시나리오 최초 공개

북한 잠수정, 사흘간 매복하다 수심 30m 지점에서 어뢰 발사

수심 30m 지점으로 잠항한 북한 잠수정은 천안함과 거의 같은 속도로 접근하면서 3km 떨어진 거리에서 어뢰 1발을 발사했다. 어뢰는 천안함을 향해 나아가 가스터빈실 좌현 3m 아래, 수심 약 6~9m 부근에서 근접신관의 감응으로 정확하게 폭발했다. 어뢰가 발사된 후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과 공격에 대한 구체적인 가설 첫 공개
⊙ 북한 연어급 잠수정, 2010년 3월 24일 서해 비파곶 기지 출항
⊙ 천안함, 백령도 좁은 해역에서 ‘8자형 패턴’ 경계 수개월째 반복한 것이 禍根
⊙ 폭발 몇 초 후 물기둥이 함 중앙 치는 모습 보며 명중 확인… 3월 30일 母기지 복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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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4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전시시설 준공식’에서 황기철(왼쪽에서 넷째)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관계자, 천안함 희생 장병 유가족들이 전시된 천안함을 살펴보고 있다.
 천안함 피격(被擊) 5주기를 앞두고, 폭침을 일으킨 북한 잠수정의 움직임과 공격 방식에 대한 가설(假說)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내용은 폭침(爆沈) 당시(2010년 3월 26일) 수중 해양환경과 한미(韓美) 군(軍) 당국의 정보, 천안함의 항적자료, 북한의 잠수정 전술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것으로 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 청와대 국방비서관실(室)이 내부적으로 공유했던 사안이다.
 
  이런 사실은 천안함 폭침 당시 청와 대 국방비서관실에 근무했던 행정관 이종헌(李鍾憲)씨가 1월 말 출간할 《실록 천안함》에 담겨 있다. 《월간조선》은 앞서 원고 일부를 입수했다.
 
  지금까지 북한 잠수정의 구체적인 이동경로나 공격방식에 대한 군 당국의 분석과 판단은 있었으나 그 경로 등에 대한 추정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앞서 2011년 간행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는 피격 발생에서 구조·인양 등 피격 이후의 정부 대응이 중심이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공격 가설은 천안함 피격의 객관적 사실로 단정할 수 없으나 축적된 정보와 자료, 합리적 판단을 토대로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천안함 진실규명 노력의 값진 산물이자 결정판이다.
 
  이 전 행정관은 책 출간에 앞서 “지금도 상당수 국민이 북한 공격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천안함 공격을 북한 전쟁범죄와 도발 목록에 올리는 데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지난 5년은 천안함 희생의 탈상(脫喪) 과정이었다. 고귀한 희생을 새로운 남북 화해와 협력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이 일어나기 전부터, 우리 군은 북한 잠수정에 의한 어뢰 공격 가능성을 검토했다. 몇 차례의 전술토의도 진행했다. 당시 군 정보 파트는 북한이 잠수함을 활용해 함정 공격을 연습하고 있다는 첩보를 보고하기도 했다.
 
  2010년 1월, 합참은 북의 잠수함 공격에 대비해 함정의 방향을 자주 바꾸는 등 상황별 대응조치를 지키고 숙달하도록 지시했다. 또 해군도 2월 22일부터 구축함과 초계함, 잠수함 등 각종 대잠(對潛) 전력이 참가한 가운데 북한 잠수함의 함정 공격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겨우내 얼었던 북한 서해안의 결빙(結氷)이 풀리던 그해 3월 23일 북한 남포와 비파곶, 해주 기지에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연어급 잠수정, 예비 모선(母船) 등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지만 이내 북한 상어급 잠수함(300t급) 2척은 3월 23일부터 28일까지, 연어급 잠수정(130t급)은 3월 24일부터 31일까지 미식별됐다. 하필 비파곶과 남포의 해군기지 등이 구름에 가려져 있어 한미 당국의 감시망은 이들의 기지 이탈과 사라진 ‘순간’을 포착할 수 없었다.
 
  동시에 예비 모선 여러 척도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피격 당일 3월 26일 해군 2함대엔 ‘또 다른 공작 예비 모선과 연어급 잠수정 1척이 기지를 이탈하여 미식별되고 있다’는 정보보고가 전파됐다.
 
  피격 이후 한미 당국은 모든 감시망을 총동원해 북한 잠수함 기지와 잠수함정을 정밀 추적했다. 이들 미식별 잠수정과 공작선은 3월 31일에야 포착됐다.
 
  이 전 행정관에 따르면, 북한 잠수함정의 미식별 사례는 매우 잦았다고 한다. 수일 또는 수십 일 동안 행적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1년 6월에도 북한 잠수함 한 척의 행방불명이 예상 외로 길어져 우리 군 당국을 긴장시킨 일이 있었다.
 
  특정한 잠수함의 ‘실종 상태’가 길어지면 한미 군 당국의 긴장은 점점 높아져 간다. 다른 수상함이나 전투기, 탱크와는 달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알 길이 없고 또 해안 침투 등 특이하고 다양한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함정 수리 등을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가 있거나 훈련 중인 것으로 믿으며 애써 긴장을 달랜다.
 
 
  수개월째 같은 경계 패턴이 禍가 돼
 
인양한 천안함의 아랫부분을 촬영한 사진. 외부 충격으로 선체가 안쪽으로 눌려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잠수함정은 기지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한번 행적을 놓치면 우리 감시망에 다시 잡힐 때까지 어디서 뭘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최첨단 군사위성이나 한미연합 영상장비의 어떤 광학 렌즈도 수중(水中)을 탐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상(水上)이 아닌 수중을 찍는 렌즈는 없기 때문이다. 전파도 수중에서는 얼마 나가지 못해 사정은 거의 같다.
 
  특히 매복과 기습을 노리는 수중의 적을 막기란 매우 힘들다. 북한 잠수정은 초계함이나 대잠항공기가 올라갈 수 없는 NLL 이북의 특정 지점에서 잠항(潛航)을 시작해 공해로 나가고, 공해상에서 대기하다 침투하는 전술을 주로 쓴다. 이 전 행정관의 말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 잠수정도 같은 경로를 따랐습니다. 군은 북의 잠수정 예상 침투경로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대잠시설을 설치했지만 충분하지 않았고, 결국 숨어드는 적을 탐지하는 것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大靑海戰) 이후 서해 NLL의 백령도 남서방 경계작전은 이미 수개월째 같은 경계 패턴을 유지해 왔습니다. 따라서 경계수역과 대응체계는 이미 북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 전 행정관은 북한 연어급 잠수정이 3월 24일 비파곶 기지를 출항해 서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작 모선과 조우했을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천안함 공격조인 공작 모선과 잠수정이 함께 움직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리 감시 자산에서 사라졌다. 따로 움직였을 것으로 본다. 따로 움직일 경우 우리의 정보 감시체계를 피할 가능성이 높고 포착되더라도 통상적인 훈련 등으로 위장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작 모선의 역할은 주로 잠수정에 연료나 음식물을 보급하거나 평양으로부터 내려온 작전명령을 전달한다. 당시 잠수정은 공작 모선으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받고 스노클(일종의 숨대롱)만 수면에 노출한 채 공해상으로 남하하다 백령도 서남방으로 은밀히 침투, 3월 25일 오후 백령도 서북쪽 천안함 경비 수역 외곽에 도착해 매복에 들어갔다.
 
  이때 천안함은 기상악화 때문에 경계수역을 이탈해 대청도 서방에 닻을 내리고 피항 중이었다.
 
  잠수정이 어뢰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6노트 이상의 속도로 기동해야 하고 발사침로 유지를 위해서는 5노트 이상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또 조류 속도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수면 근처보다는 최소 30m 이상 수심이 깊은 곳에서 어뢰를 발사해야 한다. 이 전 행정관의 말이다.
 
  “북한 신형 잠수함정의 탐지거리는 우리 초계함(PCC) 소나(음탐장비)에 비해 너무나 월등했습니다. 북한 잠수정에 장착된 어뢰의 사거리는 12km 이상으로, 천안함 소나의 탐지거리보다 몇 배 이상 길었어요. 잠수정은 천안함이 탐지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숨어서 멀리서 보고 어뢰를 쏠 수 있었어요.”
 
 
  북한 잠수정, 천안함 가까이에 접근해 ‘에이치아워’ 기다려
 
천안함 피격 4주기인 2014년 3월 27일 인천시 옹진군 46용사 위령탑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참배’에 참석한 군 장병들이 희생자들의 부조 앞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다음은 구체적인 천안함 폭침 가설이다.
 
  피항 중이던 천안함은 3월 26일 오전 8시30분 임무수역에 복귀했다.
 
  3월 26일 백령도 앞 파고는 3.5m로 매우 높았다. 북한 잠수정은 25일 오후 천안함 경비수역 외곽에서 매복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천안함은 합참의 ‘잠수함 대응지침’에 따라 1~3마일 정도마다 침로를 급격히 바꾸며 불규칙하게 기동했다.
 
  3월 16일 평택항을 떠나 이 좁은 해역에서 11일째 8자형의 유사한 패턴으로 돌며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거의 제자리에 붙박이로 있는 아주 쉬운 표적이었다.
 
  북한 잠수정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천안함은 오전 11시, 오후 1~2시30분, 오후 5시와 7시 등 여러 차례 수심 50m 이상 수역으로 진입했다가 다시 백령도 인근으로 들어갔다. 이날 비운(悲運)의 천안함은 오후 2시부터 포상휴가를 내걸고 함내 승조원들의 ‘도전 골든벨’ 행사를 열고 있었다.
 
  주간의 기습은 위험하다. 발각될 위험이 높고 은밀한 도주가 용이하지 않다. 잠수정은 끈질기게 에이치아워(H hour·공격 개시 시각)를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북한 잠수정은 남동쪽으로 흐르는 조류를 타고 모든 소음을 죽인 채 잠항하며 경비구역 안으로 파고들었다. 공격 대기 지점은 백령도 서방 5마일 지점이었다. 드디어 밤이 되었다. 이날 밤은 월광(月光) 81% 수준. 표적 탐지 및 식별도 비교적 쉬웠다.
 
  밤 8시부터 천안함은 먼바다로 나오지 않고 백령도 연안과 3.5km 정도 거리를 두고 152도 방향으로 동남진을 시작했다. 천안함은 밤 9시5분 백령도 쪽으로 45도 변침(變針)하면서 속력을 높였다.
 
  일반적으로 배가 항로를 바꾸는 순간 파도를 배 옆쪽으로 받게 되면 배가 많이 흔들리게 된다. 천안함은 파도의 영향을 최소화해 덜 흔들리게 하기 위해 속력을 9.4노트로 올렸다. 변침이 완료되자 속력은 5.2노트로 떨어졌다.
 
  백령도 방향으로 나아가던 천안함은 밤 9시10분쯤 327도 북서 방향으로 최후의 대(大)변침을 실시했다. 천안함은 백령도 ‘두무진’ 해안선과 나란히 6.7노트로 움직였다. 잠수정은 밤 9시17분쯤 마침내 공격이 용이한 수심 50m 지점으로 접어들었다. 이때 잠수정은 천안함의 8시 방향에 있었다. 천안함은 함의 좌현을 잠수정에 그대로 드러낸 채 북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좁은 해역, 8자형 패턴의 悲劇
 
미국의 민간 상업 위성 구글어스에 찍힌 북한 남포기지에 정박 중인 연어급 잠수정. 2011년 6월 촬영됐다.
  좁은 해역 내 8자형 패턴의 움직임은 잠수정이 천안함의 함 중앙을 공격할 수 있고 명중률이 극대화된 최적의 각도를 노출시켰다. 북한 연어급 잠수정은 28m 크기로, 좌우 발사관에 직경 54cm, 총 길이 7.35m, 무게 1.7t의 어뢰(CHT-02D) 2발을 장착하고 있었다.
 
  자체 소나로 천안함의 항적을 추적하던 북한 잠수정은 수심 40m 지점에서 공격 대기를 하다가 수심 10m로 부상해 잠망경을 꺼내 최종 목표를 식별했다.
 
  다른 변침 없이 10여 분째 북서 방향으로 움직이는 천안함 불빛이 확인됐다. 그리고 다시 수심 30m 지점으로 잠항한 후 천안함과 거의 같은 속도로 접근하면서 3km 떨어진 거리에서 어뢰 1발을 발사했다.
 
  수심 30m 지점에서 유속 2.89노트의 썰물을 가르며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비스듬히 상승했다. 어뢰는 천안함의 추진기와 엔진으로부터 방사되는 소음을 탐지하여 가스터빈실 방향으로 진입했다. 어뢰는 천안함을 향해 나아가 가스터빈실 좌현 3m 아래, 수심 약 6~9m 부근에서 근접신관의 감응으로 정확하게 폭발했다. 어뢰가 발사된 후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폭발 몇 초 후 물기둥이 함 중앙을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명중임을 확인한 잠수정은 서해 쪽 공해상으로 도주했다. 피격 1시간20분 후 대북 경계와 도주로 차단을 위해 속초함이 현장에 도착했다. 속초함은 북쪽 NLL 방향을 수색하다가 레이더에 걸린 특이물체를 탐지하고 포탄을 쏘기 시작했다. 이미 잠수정은 우리 군의 서쪽 작전경계선 AO(작전지역·Area of Operations) 바깥 공해상으로 도주한 후였다. 그리고 이 잠수정은 3월 30일 모(母) 기지로 복귀했으며 31일 식별됐다.
 
 
  탄로난 北의 거짓말
 
2014년 4월 구글어스가 북한 남포 상공에서 촬영한 연어급 잠수정. 북한은 여러 차례 “연어급 잠수정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은 진상공개장에서 ‘우리는 알루미늄 합금이 아닌 강철합금 재료로 만든 주체식 어뢰를 쓴다’며 피격 현장에서 수거한 통칭 ‘1번 어뢰(CHT-02D 어뢰)’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번 어뢰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프로펠러의 성분은 알루미늄-규소합금(Al 86%, Si 14%)이었으나 고정타와 축은 철로 되어 있었다.
 
  북한이 수출용으로 전 세계에 뿌린 CHT-02D 어뢰 소개 자료를 살펴보면 ‘어뢰의 외피는 알루미늄, 마그네슘 고강도 합금’으로 명시되어 있다. 북한의 강철어뢰 주장이 곧바로 허위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북한은 ‘연어급 130톤짜리 잠수정은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금세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다른 군사용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을 제시할 필요도 없이, 상업용 민간위성인 구글어스 영상에 이 연어급 잠수정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북한은 총 70여 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안함을 공격한 연어급 잠수정은 10여 척을 가지고 있다. 북한 서해 해군기지 중 잠수함정을 운용하는 곳은 황해북도 초도와 비파곶, 그리고 황해남도의 옹진 사곶과 해주이다. 또한 대동강 하구 서해갑문 안쪽의 남포항에는 북한 서해함대사령부와 특수임무를 띠고 활동하는 잠수정 기지가 있다. 초도에는 9전대, 비파곶에는 11전대가 있다.
 
  사곶과 해주에는 주로 고속정과 어뢰정을 운용하고 있으나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소형 잠수정이 드나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행정관의 말이다.
 
  “사건 발생을 전후해 서해에서 기동했던 주변국의 잠수함정은 모두 식별됐고 그 위치도 확인됐어요. 다만 북한의 잠수함정은 식별되지 않고 있었어요. 여기에 연어급 1척과 공작 모선 1척이 공격 전에 모 기지를 이탈했으며 공격 후 복귀했던 겁니다. 당시 시계불량 등의 이유로 추적하지 못해 행방을 놓쳤던 잠수함정 중에서 연어급 1척이 실제 공격에 참여한 것입니다.”⊙
등록일 : 2018-04-06 13:24   |  수정일 : 2018-04-0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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