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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5개국, 美 안보우산 속으로

글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노르웨이군 여성 특수부대원들이 스키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photo 노르웨이군
핀란드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1865~1957)이다. 시벨리우스는 제정러시아의 지배 당시 핀란드인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교향시 ‘핀란디아’를 작곡했다. 1899년 초연된 핀란디아는 제정러시아 당국에 의해 금지곡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인들의 민족혼을 고취시켰다. 당시 제정러시아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핀란드를 병합하려고 자치권을 폐지하고, 의회와 언론을 탄압하고, 러시아어를 강요하는 등 온갖 핍박을 가했다. 핀란드인들은 제정러시아의 폭정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벌이면서 핀란디아를 애국가처럼 불렀다. 올해는 핀란드가 제정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핀란드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시벨리우스를 흠모하는 행사를 갖고 ‘핀란디아’를 마음껏 노래하고 있다.
   
   북유럽에 있는 핀란드는 인구가 56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나라이다. 동쪽으론 러시아, 서쪽으론 스웨덴, 북쪽으론 노르웨이와 국경을 각각 맞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에스토니아와 마주 보고 있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제정러시아와 이를 승계한 옛 소련과 악연을 맺어왔다. 핀란드는 1155년부터 1809년까지 스웨덴의 오랜 지배를 받아왔다. 스웨덴은 1809년 제정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패하자 핀란드 영토를 제정러시아에 넘겼다. 제정러시아는 핀란드를 자치령인 대공국(大公國)으로 만들어 간접 지배했다. 제정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핀란드 대공을 겸했다. 제정러시아는 핀란드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총독을 보내 강압 통치를 해왔다. 제정러시아가 1917년 ‘2월 혁명’으로 붕괴되면서 핀란드는 독립했다.
   
   
▲ 스웨덴 수륙양용함이 나토의 상륙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photo 나토

   핀란드 정치·문화계 장악했던 親蘇派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벌였지만 패배해 영토의 12%를 소련에 넘겨야만 했다. 소련과 나치독일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독·소불가침조약)을 맺고 북유럽의 일부를 각각 분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발트 3국을 점령하고 핀란드에도 영토 일부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핀란드가 이를 거절하자 소련은 1939년 11월 핀란드를 침공했다. 핀란드는 1940년 3월까지 계속된 이른바 ‘겨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영토 일부를 소련에 할양했다. 이후 핀란드는 나치독일의 지원을 받아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소련과 전쟁을 벌였다. 핀란드는 처음에는 영토를 회복했지만 나치독일의 패배로 전세가 바뀌면서 소련과 정전협정을 맺고 또다시 영토 일부를 내주어야만 했다.
   
   핀란드는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주도해서 만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결성한 바르샤바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는 등 외교·안보적으로 중립국을 표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소련과 1300㎞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핀란드는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는 핀란드는 침공받을 경우 소련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조항과 소련을 위협하는 어느 국가에도 자국의 영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사실상 소련의 영향력을 인정한 셈이었다. 이에 따라 핀란드에선 친소파가 정치권과 문화계 등을 장악했다. 실제로 정치인들과 언론은 소련을 비판하지 않았다. 소련에 반대하는 도서들도 유통될 수 없었다. 핀란드의 영상물 등급 위원회는 소련에 반대하는 영화도 금지했다. 특히 핀란드는 소련의 심기를 거슬리는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여기서 만들어진 국제정치학 용어가 ‘핀란드화(Finlandization)’이다. 핀란드화는 강대국과 인접한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자국의 국익을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는 1953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칼 그루버가 대(對)소련 외교를 핀란드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이후 이 용어는 옛 서독 기사당 당수와 국방장관을 지낸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1915~1988)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을 소련의 눈치를 보는 핀란드에 빗대 비판하면서 사용됐다. 당시 슈트라우스는 소련이 동독을 완전히 통제하고 서독을 ‘핀란드화’하면서 독일의 영구 분단을 획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트라우스는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통해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슈트라우스는 핀란드화는 서독의 중립을 의미한다면서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서독에서 나토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서독을 중립화하려는 것이 아니었지만 당시 슈트라우스가 소련에 좌지우지되는 핀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하면서 서독의 주권과 국익을 강조한 것은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냉전시절 핀란드는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소련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는 등 친소 노선을 보여왔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소련에 대한 의존도가 40%에 달하면서 핀란드는 소련의 압박에 취약했다. 핀란드는 소련이 붕괴한 1989년 이후에도 후신인 러시아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상정해왔다. 핀란드가 지금까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우려해왔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유럽연합(EU)에 1995년에야 가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내재된 안보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생존을 위해 강대국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핀란드 국민들은 ‘핀란드화’라는 용어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국제사회에서 핀란드화는 일종의 ‘사대주의’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시벨리우스와 ‘핀란디아’의 선율이 가슴속에 있는 핀란드 국민들은 더 이상 수모를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핀란드 정부도 핀란드화라는 노선을 완전 폐기하고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핀란드는 이웃한 스웨덴과 함께 지난 6월 30일 영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신속대응군에 참여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스웨덴도 지금까지 나토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국가적으로 중립을 표방해온 국가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이 협정에 따라 앞으로 나토 회원국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군사적 억지활동과 인도적 지원 임무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나토는 2003년 국제 분쟁 등에 대응하기 위해 각 회원국들에서 차출된 병력 1만3000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했다. 신속대응군은 육·해·공군 및 특수전 부대를 단일지휘체제에 두는 나토 산하 최초의 부대로, 출동 명령 5일 이내에 전 세계 분쟁지역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기동성과 작전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속대응군의 지휘권은 영국이 갖고 있다.
   
   
▲ 노르웨이 F-16전투기가 러시아 Tu-95 전략폭격기의 영공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photo 노르웨이군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 실시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와 군사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은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핀란드가 외교·안보 정책을 바꾼 이유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는 등 패권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폭기들은 최근 들어 핀란드의 영공을 자주 침범하는 등 군사력을 과시해왔다.
 
과거 두 차례나 옛 소련과 전쟁을 벌였던 핀란드는 더 이상 핀란드화라는 노선을 추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핀란드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냉전 시절에도 미국과는 군사 협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핀란드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러시아의 영토 팽창 야욕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단호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핀란드는 지난해 10월 미국과 안보협력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앞서 핀란드와 미국 공군은 지난해 8월 24일 핀란드 남부 지역 상공에서 가상 적을 퇴치하는 연합 공중전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핀란드가 자국 영토 내에서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핀란드는 지난 3월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회의에도 참석했다.
 
이 회의는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 증액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러시아 군사위협 대처, 테러와의 전쟁 등을 논의한 자리였다. 핀란드는 지난해 국방예산을 28억8630만유로(3조6500억원)로 3년 만에 증액하면서 역대 최고치까지 늘렸다. 핀란드군 병력은 3만3000명으로 러시아(76만6000명)의 20분의 1 수준이다. 핀란드는 지난 3월 우리나라로부터 1억4500만유로 규모의 K-9 자주포 48문을 도입하기로 하는 등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스웨덴도 더 이상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미국과 나토의 안보우산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스웨덴은 핀란드에 앞서 지난해 6월 미국과 안보협력협정을 체결했으며, 유사시 자국 영토 내에서 나토군의 훈련을 허용하는 내용의 주둔군 지원협정도 맺었다. 스웨덴이 미국 등 나토와의 군사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되면서 발트해 지역의 안보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러시아의 전폭기들이 최근 들어 스웨덴 영공을 자주 침범해왔고, 러시아 잠수함들이 수도 스톡홀름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스웨덴은 과거 몇 차례 전쟁을 벌이는 등 러시아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 미군 장교가 자국과 핀란드군 병사들에게 훈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핀란드군

   F-35 27대 도입한 덴마크
   
   스웨덴 정부는 지난 3월 남녀 모두 의무징병제를 재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스웨덴은 2010년까지 의무징병제를 실시했지만, 이후 지원자만으로 필요 인원이 충당되자 의무징병제를 폐지했었다. 스웨덴 국방부는 “의무징병제 재도입은 러시아의 위협 등 안보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웨덴 국방부는 군 병력 규모를 20% 늘릴 계획이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자체 방어 계획을 세울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특히 스웨덴은 러시아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은 러시아가 핵을 장착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서부 역외(域外)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배치하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껴왔다.
   
   핀란드와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과는 달리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는 모두 나토 회원국이다. 이들 3개국은 대응책으로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국가들 가운데 미국과 군사협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국가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핀란드 접경지역인 노르웨이 핀마르크주에 2020년까지 레이더 기지를 설치할 예정이다. 노르웨이 북부 지역인 핀마르크는 러시아 무르만스크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노르웨이에 설치될 레이더는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의 일부로, 러시아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북부 함대 활동도 감시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48대를 구입할 계획이다. 특히 외국 군대 주둔을 거부해왔던 노르웨이는 330명 규모의 미국 해병대원을 주둔시키기로 결정했다. 미 해병대가 나토군의 일원으로 노르웨이에서 훈련을 실시한 적은 있지만 주둔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나토 회원국으로는 처음으로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덴마크도 미국으로부터 F-35 27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덴마크는 그동안 나토가 실시하는 군사 훈련에 빠짐없이 병력을 파견해왔으며, 노르웨이와 함께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해왔다. 아이슬란드는 소규모 해안경비대만 있고 군대가 없는 유일한 나토 회원국이다. 미국은 냉전 시절 전략 요충지인 아이슬란드에서 운용하다가 2006년 폐쇄했던 공군기지를 재건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이 기지를 이용해 러시아의 전략 핵잠수함을 감시할 수 있는 항공기를 운용할 방침이다. 북유럽 국가들과 인접한 발트 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은 미국을 비롯해 나토 회원국들의 군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발트 3국은 과거 소련에 영토가 편입된 적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있다. 때문에 발트 3국은 미국과의 안보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핀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의 외교·안보 노선 변화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도 상당한 교훈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도 옛 소련처럼 동북아 각국에 핀란드화를 강요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면서 한국에 각종 보복 조치를 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은 대만에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외교적 봉쇄조치와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몽골은 중국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를 영원히 초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말 그대로 몽골의 핀란드화다. 하지만 사드 문제에서 보듯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목표는 핀란드화라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반적 시각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언급했듯이 중국은 주변국들을 역대 왕조 시대처럼 조공·책봉(朝貢·冊封) 관계로 맺어놓으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추진하는 ‘21세기판 조공·책봉 체제’가 바로 핀란드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핀란드화를 폐기한 핀란드의 단호한 선택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등록일 : 2017-07-13 09:27   |  수정일 : 2017-07-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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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곤  ( 2017-07-17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0
벌써 10년이 다된 것 같다. 우리나라의 핀란드화에 대해 말한 것이.. 전 아마추어입니다. 그래도 이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좌우하는 문대통령 세력은 이 문제를 크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거나. 청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1년에 4차례 중국에 조공보내던, 습례정에서 황제를 만날때 예절을 익히던, 조선왕은 황제가 아니라 중국북양대신과 동격이었던, 자주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던 우리의 옛 모습을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뼛속 깊이 잘 알고 행동하던..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겁니다. 장담하건데.
모든것이  ( 2017-07-16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0
지금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이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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