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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건물도 최순실이 직접 고른 한국문화재단의 실체

한국문화재단은 진박(眞朴)의 본산(本山)이었다!

⊙ 한국문화재단 입주했던 산도빌딩 주변은 ‘최순실 타운’으로 봐도 무방
⊙ 최순실의 논문, 책 번역, 발간 도우미는 한국문화재단 관계자
⊙ 한국문화재단 이사·감사 출신 ‘박근혜 정부’에서 승승장구
⊙ “한국문화재단의 사실상 운영자는 최순실인 듯”(산도빌딩 경비원)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2016년 11월 말과 12월 초 기자는 여러 번에 걸쳐 한국문화재단이 있었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산도빌딩을 방문했다. 표면상 공익목적 장학재단이었던 한국문화재단이 실제로는 최순실 일가가 추진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본거지(本據地)였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일보》는 11월 23일 국정농단 장본인인 최순실의 운전기사 김모씨의 말을 빌려 박근혜 대통령이 32년간 이사장을 지낸 한국문화재단이 사실은 최씨 주도의 ‘박근혜 비선 캠프’였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17년간 최씨의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통화 내용은 물론 최씨 일가, 박 대통령과의 관계 등 수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처음 상위 10%에 들어간다는 속칭 ‘텐프로’ 업소인 ‘소○○’ 바로 옆에 있는 산도빌딩에서 ‘최순실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랫동안 산도빌딩 관리를 해 온 경비원과 주변의 건물, 은행, 음식점 관계자 등 다수가 최씨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딩 주변 최순실의 흔적”
 
2012년 해산할 때까지 한국문화재단이 입주해 있었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산도빌딩.
  산도빌딩 경비원의 이야기다.
 
  “제가 자주 들락거리던 사람 얼굴은 알지만 이름까지는 정확히 몰랐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TV에서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군요. 최순실씨하고, 전 남편(정윤회), 딸(정유라)이 여기에 자주 왔었어요.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도 늘 왔다 갔다 했는데, 최씨한테 꼼짝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문고리 3인방’이 최씨에게 쩔쩔매는 것을 봤습니까.
 
  “한국문화재단이 우리 건물에 입주하기 위해 최씨와 문고리 3인방이 왔는데 계약할 때 보니까 (최씨에게) 설설 기더군요. 아, (한국문화재단의) 실제 운영자가 최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문화재단은 1988년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강남 산도빌딩으로 이전했다.
 
  산도빌딩의 또 다른 경비원은 “요즘 TV에 나오는 사람, 특히 최순실이 여기 많이 왔었다”고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누구라고 꼭 집어 이야기할 순 없지만, 유명한 분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답했다. 논란을 우려해서였는지 그는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종종 찾았다는 산도빌딩 근처 한정식집. 식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최씨가 같이 온 적은 없다”고 했다.
  산도빌딩에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한식당 관계자는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이 종종 찾았다”고 했다.
 
  — 혹시 박 대통령이 최씨와 함께 식당을 방문했나요.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 안봉근씨가 몇 번 왔었는데 (박 대통령이) 최씨와 같이 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 활동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치자금 사용 내역을 보면 박 대통령은 이 식당에서 2000년부터 모두 34차례, 1400여만원어치 식사를 했다.
 
  근처 다른 식당 관계자는 “최씨는 여자분들과 주로 왔다. 예약할 때 이름은 정유연(정유라의 옛 이름)이었다”며 “두세 명이 낮에 주로 왔고 특별대우 안 바라고 그때는 얌전하게 먹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씨와 같이 온 여자 일행 중 언론에 보도되는 유명한 사람(팔선녀 의혹 대상자)은 없었다. 또 박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고 이춘상 보좌관, 최씨와 남편 정씨 등이 식당을 자주 찾은 것은 맞지만, 최씨와 대통령이 함께 오지는 않았다”고 기억했다.
 
  정치자금 사용 내역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00년부터 이 식당을 28차례 방문, 총 1285만7500원을 결제했다.
 
  최씨와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산도빌딩에서 500m가량 떨어진 신한은행에서 정치자금을 지속적으로 출금하기도 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우리 지점에서 정치자금을 출금한 만큼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우리 지점을) 자주 방문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산도빌딩 중심으로 지근거리에 최순실씨와 관련한 건물이 모여 있었다. 일대를 ‘최순실 타운’이라 봐도 무방했다.
  산도빌딩 중심으로 지근거리에 최씨와 관련한 건물이 모여 있었다. 일대를 ‘최순실 타운’이라 봐도 무방했다. 산도빌딩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최씨 소유의 미승빌딩이 있었다. 시가 250억원의 이 빌딩 1층부터 4층에는 음식점과 태국 마사지 업소 등이 입주해 있다. 마사지사 A씨는 최씨에 대해 “건물주라 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최씨는 밉상 중 밉상 손님”이라면서 “마사지사들이 서로 받기를 꺼렸다”고 했다. 타이 마사지는 원래 손뿐 아니라 다리와 발로도 마사지한다. 그런데 최씨는 항상 ‘손으로 해라’ ‘어깨를 꼼꼼하게 풀어라’라는 식으로 지시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2003년 7월 이 건물을 세우고 6~7층의 복층에 거주해 왔다.
 
  미승빌딩 바로 옆에 있는 로이빌딩은 최씨의 최측근인 고영태 더블루케이 이사의 사무실이다. 이 근처에는 최씨가 대통령 의상을 만들었다는 샘플실도 있었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정동춘 전 K 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운영했다는 운동기능회복센터(CRC)가 나온다. 최 씨는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 현재는 내부 집기가 모두 빠져나간 상태다.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내가) 정동춘씨를 (K스포츠 재단) 임원으로 추천한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운동기능회복센터에서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구정 현대아파트 상가에는 최씨가 평소 즐겨 다녔다는 목욕탕이 있다. 이 목욕탕은 영업을 중단한 지 2년 정도 된 상태로, 문 안쪽에는 독촉 고지서들이 쌓여 있었다.
 
 
  한국문화재단 연구소 부원장이었던 최순실
 
최순실씨는 1989년 10월 《어린이 버릇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라는 육아 지침서를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 최씨는 ‘한국문화재단 연구소 부원장’으로 소개돼 있다.
  한국문화재단과 최씨의 연관성은 논문과 서적에서도 발견된다. 최씨가 1989년 9월 낸 논문 〈사회문화적 환경요인에 따른 아동의 격차연구 : 인지발달을 중심으로〉를 보면, 연구책임자가 당시 한국문화재단 이사였던 김광웅씨로 돼 있다. 이 논문을 발간한 곳은 한국문화재단연구소였다.
 
  최씨는 한 달 뒤인 10월 10일 《어린이 버릇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라는 육아 지침서를 번역, 출간했는데 그와 함께 작업한 인물 다수가 한국문화재단과 관련이 있었다. 《월간조선》이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당시 최씨와 함께 번역을 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김광웅 숙명여자대학 교수, 신철희 한국문화재단 연구소 촉탁 연구원, 염숙경 한국문화재단 연구소 촉탁 연구원, 박선미 한국문화재단 연구소 연구조원.’
 
  이 육아지침서에 최씨는 ‘한국문화재단 연구소 부원장’으로 소개돼 있다.
 
  최씨는 책 서두에 ‘인간의 행동은 학습된 것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학습이 잘못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게 다시 학습시키자는 것’이라고 번역 이유를 밝혔다. 이 책은 주로 어린이의 반사회적 행동, 집단활동 방해, 감정적 행동 등에 대한 교육법을 다뤘다. 최씨는 한때 서울 강남에서 유치원도 운영했다. 논문과 번역본(飜譯本)을 통해 조기교육, 올바른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최씨였지만 정작 본인 자식 농사는 잘 짓지 못했다.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는 지난 2014년 말 이화여대 체육교육과에 승마 특기생으로 합격했을 때 SNS에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 돈도 실력이야’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최씨의 논문과 책에 따르면 정씨는 제대로 된 조기교육을 받지 못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정씨는 2016년 12월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관리 특혜 의혹과 관련, 이화여자대학교 학교법인 이화학당 특별감사위원회로부터 입학 취소와 퇴학 처분을 받았다.
 
 
  한국문화재단의 출발
 
전중윤 삼양식품 창립자.
  한국문화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 타계 7개월 전인 1979년 3월 설립됐다. 당시 명칭은 ‘명덕문화재단’이었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명예회장이 현금 5억원 등 총 11억원을 들여 설립했다. 설립 다음해인 1980년 7월 임원 전원이 사퇴하고 만 28세였던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다.
 
  이를 두고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이 미국에서 들여온 10만 달러 차관 가운데 절반을 불하받아 라면사업으로 성공한 특혜 보답 차원에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넘긴, 정경유착성 뇌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상황을 보면 그럴 만하다. ‘오주르디’라는 파워 블로거가 쓴 ‘박근혜 재단 중 가장 은밀한 곳, 한국문화재단’이란 글에 당시 상황이 잘 설명돼 있다. 오주르디는 한국문화재단을 10년 가까이 추적했다.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은 강원도 철원의 부잣집 출신으로, 일본 강점기에 선린상고를 나와 총독부 체신국 보험과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6·25 동란 후 이 당시 경험을 살려 동방생명을 공동창업(1959년)한다. 창업 초기 경찰공무원 4만명에 대한 퇴직보험을 몽땅 유치해 업계 1위로 부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중윤은 1961년 유지공업체를 인수해 삼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무렵 정중윤은 남대문시장에서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 먹으려고 서 있는 긴 줄을 보고 일본에서 먹어 본 라면을 만들어 팔면 돈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전중윤은 박정희 정부에 라면 제조기 1대를 사들일 돈 5만 달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 잉여농산물 대금으로 보유한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대여해 줬다. 이 돈으로 1964년부터 라면을 대량생산한 삼양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고마움 때문일까. 전중윤은 자신의 딸 셋 모두 육영수 여사가 다닌 배화여고에 보냈다. 배화학원 이사장을 맡아 육영수 여사 기념관도 건립해 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계하자 보은 차원에서 맏딸인 박 대통령에게 본인이 설립한 명덕문화재단을 맡겼다.〉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듣기 위해 오주르디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오주르디의 분석처럼 삼양은 박정희 정권에 각별한 고마움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목사의 측근인 전기영 목사는 《월간조선》에 “1993년 최씨가 ‘은행에 13억원이 있고 이자도 9000만원이 나오는데 이 돈으로 근화봉사단을 이끌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라’고 했다”며 “처음 말하는 것이지만 당시 최씨에게 13억원의 출처를 물으니 ‘삼양에서 받은 돈’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신사동 캠프로 불린 한국문화재단
 
한국문화재단은 2002년 박 대통령이 잠시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탈당선언문을 작성한 곳으로 드러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02년 5월 17일 한국미래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시 대표인 박근혜 대통령이 당기를 흔드는 모습.
  한국문화재단은 2002년 박 대통령이 잠시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탈당선언문을 작성한 곳으로 드러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재단이 박 대통령의 비선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확신한 취재기자들은 이곳을 ‘신사동 캠프’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재단은 대선 때(2007년, 2012년)마다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했다. 2007년에는 그럭저럭 넘겼다. 여당 내에서의 공방이었고, 그마저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하면서 끝이 났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그러지 못했다. 야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 대통령을 가만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권은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분석, 한국문화재단이 대구광역시와 박 대통령의 선거구였던 대구 달성군 지역에 장학금을 몰아 줬다고 공격했다. 실제 자료를 보면 199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문화재단은 총 715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는데, 달성군을 포함한 대구광역시 학생은 538명으로 무려 전체의 75%에 달했다.
 
  이 가운데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 출마한 달성군 지역 학생은 206명으로 전체의 29%에 이르렀다. 지역구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은 선거 시기와도 미묘하게 겹치는 양상을 보였다. 박 대통령이 선거에 출마하기 전인 1997년에는 대구시나 달성군 학생 가운데 장학생으로 선발된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1998년에는 대구 학생 65명과 달성군 학생 20명 등에게 ‘처음으로’ 장학금이 지급됐다. 박 대통령이 달성군에서 출마했던 2000년과 2004년, 2008년에도 달성군을 포함한 대구 지역에서만 각각 69명(이 가운데 달성군 장학생은 23명), 29명(달성군 14명), 28명(달성군 10명) 등이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박 대통령은 장학금 수여 행사에도 직접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문화재단을 선거에 편법으로 동원했다는 야당의 공세 때문이었을까.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 국면에서 한국문화재단을 해체했다. 재단법인 등기부등본에 나온 걸로 보면 2012년 6월 25일 이사회 결의로 해산했고, 9월 10일 해산등기를 마쳤다. 남은 자산 13억원은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로 넘겼다.
 
  한국문화재단은 시(市) 교육청에 낸 기본재산 처분(증여) 사유서에서 ‘기본재산이 13억원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고, 대부분이 예금자산이라 수익성이 낮아 목적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한국문화재단과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는 설립 목적·취지가 같고, 같은 이사장이 운영하기 때문에 목적사업인 장학사업을 효율적으로 안정되게 운영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사무실이 한국문화재단이 입주한 산도빌딩에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인사는 “산도빌딩 5층에 한국문화재단과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가 나란히 있었다”고 했다. 해산한 한국문화재단이 하던 비선 캠프 역할을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가 이어받아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이야기다.
 
  “2011~2012년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 자료를 보면 한국문화재단과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사무실 전화번호도 같았습니다. 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박근혜 대통령으로 같았고, 이곳의 이사와 감사 다수가 한국문화재단의 이사, 감사를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재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관련 자료를 분석해 보니 한국문화재단과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에서 동시에 감사나 이사를 맡은 인사는 총 4명(최외출 한국문화재단·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이사, 김광웅 한국문화재단·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이사, 김달웅 한국문화재단 이사·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삼천 한국문화재단 감사·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이사, 이창구 한국문화재단 감사·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이사)이었다. 현재 육영수 기념사업회는 강남구 신사동 선릉로 155길에 있다.
 
 
  한국문화재단 임원 출신, 박근혜 정부서 승승장구
 
  한국문화재단에는 최씨 외에도 유독 진박 인사가 많이 포진해 있었다. 대선 때인 2012년에 이사, 감사를 맡았던 이들의 면면을 보자. 이사는 최외출·변환철·이영석·김달웅·김덕순, 감사는 김삼천·이창구씨였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진박 중에서도 성골로 불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은 이른바 ‘박근혜 5인 스터디 그룹’으로 불리는 핵심 자문 교수 그룹에 속했던 인사로, 박근혜 후보 대선 캠프인 ‘국민행복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를 맡았다. 그는 2010년 12월에 창립한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대표적인 친박 교수 모임으로 박 대통령도 회원으로 참여했었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 부총장은 지금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새마을 전도사’라는 그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새마을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예산이 500억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새마을 ODA 민관합동 분과위원회에는 최근 미르재단 이사직을 사임한 인물(조희숙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 대표)이 참여하고 있다”며 “최 부총장과 최순실씨가 어떤 관계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변환철 중앙대(사법연수원 17기) 교수 역시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국민행복캠프에 참여했다. 그는 2013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내정되기도 했지만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원 변호사 겸업 금지’ 법규 등을 어기고 편법으로 변호사 영업을 해 100건 넘는 사건을 수임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영석씨는 한국문화재단 해산 이후 육영수 기념사업회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감사 임기는 2017년 2월 2일까지다.
 
  김달웅 전 경북대 총장은 2012년 대선 당시 친박 성향 교수 연구모임인 ‘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을 조직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대선 이후에는 마사회가 출자하고 농림부가 운영하는, 연간 수백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으로 201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년간 재임했다.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전임 이사장은 박 대통령이었다.
 
  야권은 그가 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을 역임할 당시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을 허가받은 (사)한국청년취업연구원이 본래 취지에 어긋난 병원 수출사업을 하고, 정부지원금을 타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덕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2015년 3월 이북5도위원회 함경남도지사로 임명됐다. 함경남도지사는 차관급 급여와 대우를 받는다. 김 전 청장은 박 대통령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을 당시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김삼천 현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영남고와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던 영남대(화학공학과)를 나왔으며, 섬유 회사인 ‘방림’에서 전무 등을 지낸 기업인 출신이다.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회원으로,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2005년 2월 사임) 시절이던 2004년 말 상청회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 대선이 있었던 작년까지(2009~2010년은 제외) 회장직을 3차례 맡아 이 모임을 6년간 이끌었다. 그는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정치 후원금을 거의 매년 500만원(최고 한도) 정도 보냈다. 김 이사장은 2013년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자 “박 대통령과는 2005년 이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창구씨는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상청회’ 출신으로 육영수 기념사업회 이사도 역임했다. 취재 결과 이씨는 S건축사사무소 대표를 지냈다. 주목할 점은 S건축사사무소가 최순실씨가 만들려고 한 평창승마장 건축설계를 담당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이혼하기 전인 2009년 남편인 정윤회씨와 승마선수 딸인 정유라씨를 위한 마장마술 승마장을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일대에 지으려 했다. 2012년 최씨는 예상보다 높은 공사비용 때문에 승마장 건설을 포기했고, 직후 S건축사사무소는 폐업했다. 그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대형 부동산신탁회사의 사외이사와 감사로 이름을 올렸다.⊙
 
[월간조선 2017년 1월호 /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등록일 : 2017-01-13 14:35   |  수정일 : 2017-01-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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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국민  ( 2017-01-15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8
한국정치 무섭다.이러고도 민주국가냐? 묻고싶다 진실을 밝혀 잘못된 것들을 역사앞에서 바로잡아야한다. 삼양에서 돈뜯은걸로 재단만들고, 고김지태씨한테 강제로 재산몰수해서 또 재단만들고.. 기업들한테 돈뜯어내고.. 아버지가했던대로 또 딸이 기업들한테 700억? 뜯어 재단만들고..말이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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