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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출신 최연혜 의원 “남북철도, 유라시아 대륙 철도망과 연결해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19-06-04 10:31

▲ / photo by 조현호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주년이 지났다. 당시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실천적 대책들을 취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에 대한 공동조사를 마쳤다. 그러나 이후 후속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소식은 없었다.
  
1997년 한국철도대학 교수로 부임한 후 한국철도대학 총장(2007~2011)과 한국철도공사 사장(2013~2016)을 거친 최연혜 의원(자유한국당 비례대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5월 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최 의원은 ‘착잡하다’는 반응이었다.
  
“작년 12월 26일에 열린 남북철도 착수식(착공식)은 이미 2007년에 한 것입니다. 또 경의선 구간도 실제 운행해봤고요. 남북 간 신뢰가 쌓이지 않으니 하다 말고, 하다 말고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북한은 철도를 철저하게 군사시설로 본다. 그러니 단절된 남북철도를 잇는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의 철도 인프라에 대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없다. 작년 4·27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불편하고 민망하다”고 밝혔듯, 남한보다 낙후됐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최 의원은 철도·교통 전문가답게 북한 철도를 비교적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는 “남북 간 협력사업의 핵심이 철도이고 향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해, 유라시아 노선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철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통계로 보면, 북한은 남한의 1.5배 가까운 철도 연장과 80%가 넘는 높은 수송분담률 등 철도 강국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외형만 그렇지 운영 효율성이 매우 낮은 철도 후진국이라고 했다. 최 의원은 “북한의 주요 간선인 경의선을 비롯한 북한 철도망의 98%가 단선(남한은 약 37%, 2018년)”이라고 했다.
  
“약 5200km의 철도 총연장 중 전철화율이 80%(남한은 72%, 2018년)에 육박해 기술적으로 상당히 선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전력난이 심각해지면서 오히려 철도 운행의 발목을 잡고 있어요.”
  
1945년 9월 11일 서울發 신의주行 마지막 열차
 
최연혜 의원에 따르면, 북한의 선로 시설물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이후 사실상 개·보수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북한은 1961년에 ‘붉은기 1호’ 전기기관차를, 1962년에 디젤기관차를 자체 생산하면서 남한보다 앞서간 적도 있지만 이후 철도 발전은 정체된 상태다. 최 의원의 말이다.
  
“북한 철도망은 10여 개의 간선과 90여 개의 지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과거 북한 철도 일부 구간을 점검했던 러시아 조사단이나 최근 남북철도 공동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선로 시설물이 사실상 일제시대 이후 개・보수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열차가 산악 지형을 올라가는 도중 단전되면서 차량이 뒤로 밀려 전복하는 사고도 여러 차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의원은 철도공사 사장이던 2014년 4월 말 평양에서 개최된 OSJD (옛 소련권 국제철도협력기구) 사장단 회의 참석차 열차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베이징~단둥~신의주~평양 노선을 이용했다.
  
“중국 단둥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압록강 철교를 지나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압록강 철교를 통과하자마자 신의주역에 당도했고, 여기서 다시 입국 통관 절차를 거치기 위해 2시간가량 머물렀지요.”
  
최 사장 일행이 탄 신의주~평양행 열차는 디젤기관차였다. 북한에도 전차선은 설치돼 있었지만, 동네 전봇대만도 못한 수준인데다 전력 부족으로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 보였다고 한다. 그는 “열차 속도가 평균 시속 50km가 안 됐고, 일부 구간에서는 시속 20~30km로 기어가다시피 했다”고 한다.
  
“열차에서 본 풍경 중 인상에 남은 것은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거의 평야 지대였는데, 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일하는 사람들 옆에 어쩌다 소 한두 마리, 양 몇 마리와 닭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과거 남북 간을 운행하던 철도는 경의선, 경원선, 금강산선, 동해선의 4개 노선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인데 해방 후 남북 분단으로 1945년 9월 11일 서울에서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한 이래 반세기 이상 단절됐다. 끊긴 철도 위의 녹슨 기차는 남북 분단의 상징물이 되었다.
  
경의선 27km와 동해선 26km의 단절 구간
 
작년 12월 26일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모습이다. 이날 착공식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철도 연결사업의 역사는 짧다고만 할 수 없다. 남북한이 처음 철도 연결에 합의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동서독의 통일 무드에 자극받아 이듬해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9조에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항로를 개설한다’고 명시했고, 부속합의서 제3조에 ‘경의선 철도를 연결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죽음으로 철도 복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논의가 재개됐다. 2000년 6월 13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경의선 27km와 동해선 26km의 단절 구간이 새롭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2000억원 가까이 쓰였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운행 한 번 못 한 채 방치된 상태다. 최 의원의 말이다.
  
“도로도 그렇지만 철도는 정기적으로 운행하면서 유지·보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못 쓰게 됩니다. 60차례가 넘는 남북 간 회담 속에 (남북철도 운영에 대한) 수없이 많은 합의와 파기가 되풀이되었죠.”
  
문재인 정권 들어 남북 간 철도 연결사업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 의원은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은 막대한 투자와 오랜 시간을 요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국회를 통한 국민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추진 동력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 남북철도 연결사업의 당위성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투자와 지원의 절차 및 방법이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북한 최고위층의 불가역적인 의지가 확인돼야 해요.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며 졸속으로 추진되었던 남북 간 사업들이 실패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의 핵심은 노후한 북한 철도 현대화에 들어갈 재원의 조달 방법에 있다. 끊긴 철도만 연결한다고 기차가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상 철도망 전체를 새로 깔아야 하기에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 의원의 말이다.
  
“최근 추진된 북한 철도 개량사업인 ‘나진-핫산 사업(북한 나진역~러시아 핫산역을 연결하는 철도사업)’을 보면, 54km 남짓한 구간에 10개 역과 3개 터널, 40개 교량을 사실상 새로 건설했습니다. 북한의 현물 투자를 제외하고도 우리 돈으로 3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남북철도 연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초석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남북 간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대륙철도가 개통돼 실질적으로 남북이 얻는 이익은 얼마며, 투자할 가치는 충분한지, 사업의 경제성은 어떠한지가 숫자로 제시돼야 합니다. 그래야 국내외 민간투자까지 유인할 수 있어요.”
  
남북철도 사업과 ‘철도 主權’
 
남북은 철도운영에 대한 수많은 합의와 파기를 되풀이했다. 2008년 11월 25일 오후 개성공단 화물열차가 운행을 마친 뒤 도라산역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북한은 그해 12월 1일부터 개성관광과 남북 철도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일각에선 북한 철도를 놓아주는 대신 철광석·희토류 등 광물로 (비용을) 받으면 된다느니, 북한의 지하자원 가치가 수백조원에 이른다는 식의 소문이 돈다. 최 의원은 “확실하고 입증 가능한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며 “먼저 건설비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금껏 북한 철도를 제대로 실사한 적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이 북한 철도 현대화 비용이라며 수십조원에 달하는 비용 추계를 남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예컨대 단선으로 하느냐 복선으로 하느냐, 또 일반철도냐 고속철도냐에 따라 비용은 하늘과 땅 차이죠.”
  
최 의원은 “북한이 무조건 고속철도 건설을 요구한다는 말도 들린다”며 “이는 막대한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남북철도 사업이 경제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대륙철도와 연결돼야 하는데, 유라시아 대륙 철도망은 첫째도 둘째도 화물 운송이 생명입니다.
  
부산에서 기차 타고 모스크바, 베를린을 거쳐 런던까지 가는 것이 국민에게 가장 쉽게 와닿는 일이긴 하지만, 수요가 한정돼 있거니와 비행기와 요금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수익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북한이 고급철도(고속철도)를 요구한다는데 노후한 철도 여건상 국민은 못 쓰고 결국엔 김정은 패밀리만 쓰는 ‘김정은 특별선’으로 전락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2015년, OSJD(국제철도협력기구)가 수여하는 ‘황금마차상’ 3관왕을 수상했다.
여기서 가장 경계할 사항은 북한 철도사업의 주도권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북한 개방이 가시화되면 대륙철도 주도권을 놓고 중-러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입니다. 영토 주권과 직결되는 북한 철도는 반드시 우리 기술로 건설해야 해요. 철도는 건설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 유지·운영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기술 종속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매우 장기적인 사업이죠.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도 ‘철도 주권’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최 의원은 우리나라에 인접해 있는 국가들이 한결같이 철도 강대국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러시아·중국이 그렇고 일본 역시 세계 최강의 철도 선진국이다. 일본은 부산이나 사할린으로 연결되는 해저터널 연구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한결같이 TKR(한반도종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 연결사업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물동량 유치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러시아는 광활한 국토를 관통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주축으로 사통팔달의 철도망을 통해 유럽, 중동,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 유라시아의 모든 물류 시장을 통합하려고 합니다.
  
중국요? 중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철도 강국입니다. 중국 철도의 운송량은 전 세계 철도 운송량의 24%를 차지할 정도죠. 중국의 대외무역에서 철도 수송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국경을 접한 인접 14개국과의 교역 역시 대부분 철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최근 중국이 한반도종단철도를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중국 주도의 ‘신(新)실크로드 전략 구상’] 프로젝트에 포함시켰어요.
  
제가 중국 측에다 ‘사전조사를 했느냐’고 물으니 ‘아직 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다만 ‘북한 철도를 중국이 깔아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 소확행의 묘미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은 러시아 자연과의 만남이다. 혹자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모험’이라고 말한다.
최 의원은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 예찬론자다. 이미 2006년과 2013년 관련 여행서를 펴냈고, 최근 개정판 《시베리아 횡단철도: 내 마음의 실크로드》(RHK코리아 刊)를 다시 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철도여행 중에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을 가장 특별한 여행으로 꼽는다”고 고백한다.
  
“우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함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과 중국을 합한 것보다도 크고, 남북한을 합한 넓이의 100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로서 2개의 대륙에 걸친 러시아를 온몸으로 헤쳐나가다 보면 공간의 광활함이 뼈에 사무쳐옵니다. 이틀을 꼬박 달려도 어쩌다 오막살이집 한두 개 마주칠 뿐인 대륙의 막막함을 느끼게 되죠.”
  
최 의원에 따르면 시베리아에는 원시(原始)의 체취가 남아 있다고 한다. 겨울에는 영하 60℃까지 넘나들다가 여름에는 영상 40℃를 넘어서는 극한의 기후가 그렇다.
  
그러나 시베리아횡단철도에서는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과는 다른 시간의 원칙이 지배한다. 시속 500km 자기부상열차의 상용화를 앞둔 이 시대에 시속 80~90km로 쉼 없이 달려간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서두르지도,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지나치는 풍광을 고즈넉이 바라볼 수 있는 속도죠.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관조하며 내면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속도입니다.”
 
최연혜 의원이 최근 개정판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냈다.
최 의원에게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익숙한 세상과의 단절이다.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음식, 그리고 열차의 규칙적인 움직임만큼이나 단조롭기만 한 그 많은 시간과 맞닥뜨리다 보면 재미없는 것들의 재미, 소확행의 묘미를 만나게 된다.
  
시베리아횡단철도의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간 거리는 9288km로, 지구 둘레의 3분의 1이다. 비행기로는 9시간 반이면 도착하지만, 열차로는 시속 80~90km로 6박7일간 달린다.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간 6인실 열차요금은 240달러 내외다. 같은 구간 비행기 요금의 5분의 1 수준이다. 2인 1실은 510달러쯤으로 항공료의 절반 정도다.
  
“러시아의 철도문화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따라 수놓은 듯 펼쳐지는 역사 건축물에도 잘 나타나 있어요. 하늘색, 민트색, 노란색, 분홍색을 비롯해 갖가지 파스텔톤 색으로 단장된 러시아의 역들은 건축 미학적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지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손기정·이광수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내부 모습이다. 겹유리에 크기가 작은 창문과 통로식 객실은 1869년 표준사양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시베리아횡단열차로 이어진 길은 일제강점기 망국(亡國)의 한을 가슴에 품은 민초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정처 없이 헤맸던 길이자, 열차 화물칸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던 수많은 ‘카레이스키’들이 여독으로 죽음을 맞았던 길이다.
  
“해방 전 서울역에서 국제철도를 이용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한국인 중에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영광스러웠던 여행자로 손기정 선생을 꼽고 싶어요. 1936년 베를린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 선생은 남승룡 선수와 함께 유학 중이던 도쿄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를 타고 갔으니까요.”
  
당시 손기정(孫基禎·1912~2002)은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시모노세키에 도착해 페리로 부산에 온다. 기차로 부산~서울~신의주와 만주 대륙을 통과하고 시베리아횡단철도로 모스크바와 바르샤바(폴란드)를 거쳐 장장 17일 만에 베를린에 입성한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귀국길은 59일간에 걸친 뱃길이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서 손기정 선수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다.
당시 대장정의 비용은 얼마였을까. 최 의원에 따르면, 횡단열차의 2등 급행 침대요금이 391원38전(50% 할인된 금액), 일주일 동안 시베리아철도의 식권이 72원13전, 돌아올 때의 뱃삯, 베를린 체재 중의 식비 등을 모두 합치면 한 사람당 3000원이라는,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거금이 들었다고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선생이 기차에서 지내는 동안 고생이 말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서울역을 떠나 베를린에 도착하기까지 특히 소련 구간에서는 기차에서만 2주일 가까이 보냈는데, 선로가 잘 정비된 지금도 기차에서 며칠을 먹고 자다 보면 기차에서 내려도 땅이 덜컹대는 것처럼 울렁거림을 느끼는데, 컨디션 조절이 필수인 올림픽 참가 선수에게는 큰 고역이었을 거예요.
  
손·남 선수는 열차가 정차한 동안 굳어진 몸도 풀 겸 철도를 따라 뛰었는데, 소련 관리들이 군수품 열차의 기밀 정보를 염탐하려는 것으로 오해해 곤란을 겪었다는 말도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철도를 군사시설로 보기 때문에 보안이 매우 삼엄합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은 우리 민족이 걸어온 대륙의 길
 
춘원 이광수의 장편소설 〈유정〉은 ‘철의 실크로드’가 총동원된 러브스토리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의 소설 중 〈유정(有情)〉은 1930 년대 우리나라에서 펼쳐졌던 ‘국제화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1933년 10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 〈유정〉은 ‘최석’이라는 명망 있고 양심이 날카로운 중년 남자와 ‘남정임’이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의 러브스토리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최석이 시베리아로 떠나고, 도쿄에 유학 중이던 남정임이 최석을 단숨에 쫓아갈 수 있을 정도로 1930년대 우리나라에 대륙 철도가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편 및 통신 시스템도 상당히 발달해서 만주나 이르쿠츠크의 호텔에서 전보를 치면 서울에 하루 이틀 안에 도착하고 송금하면 며칠 만에 돈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서 열차는 기본이고, 관부 페리, 비행기, 택시에 이르기까지 어찌 보면 요즘보다 더 다양하다.
  
“특히 최석은 남정임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프로펠러기를 타고 하루 반 만에 도쿄에 가는 장면도 나옵니다. 최석의 딸 순임의 입을 빌려 서울에서 시베리아에 가는 방법들을 소개하는데, 요즘 우리가 말하는 소위 ‘철의 실크로드’가 총동원되고 있어요.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은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모험’이자, 러시아 땅에 묻혀 있던 우리 민족이 걸어온 대륙의 길을 되찾기 위한 여행이기도 합니다.”
등록일 : 2019-06-04 10:31   |  수정일 : 2019-06-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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