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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 체포 도미노, 미국 기자들에 불똥 튀나

글 | 김회권 주간조선 객원기자 2019-04-24 09:42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안 어산지(47)가 체포됐다. 잘 빗어넘긴 은발에 가죽재킷이 어울리던 세기의 폭로자는 7년간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덥수룩한 수염에 살찐 모습으로 등장했다. 지난 4월 11일 오전 7년간 도피 중이던 주영 에콰도르대사관에서 체포돼 나오는 그의 모습은 전 세계로 타전됐다. 영국 경찰은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른 것이다”라며 어산지를 다른 나라에 넘길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영국 언론들은 어산지가 곧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에 출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위키리크스 창시자 줄리안 어산지가 지난 4월 11일 런던 경찰에 의해 망명 은신 중이던 에콰도르대사관에서 체포되어 끌려나온 뒤 치안 법정으로 호송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어산지가 도피자가 된 건 2010년 미국을 곤란하게 만든 수많은 폭로 이후 생긴 문제 때문이었다. 2010년 스웨덴은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어산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합의 아래 이뤄진 성관계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음모라고 말했다. 2010년 12월 어산지는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지만 보석으로 풀려났고 스웨덴 송환을 중지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2012년 6월 영국 대법원은 그의 스웨덴 송환을 결정했다. 이때부터 어산지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으로 피신했고 7년간 스스로를 가둔 채 지내야 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대치하던 에콰도르 정부였지만 2017년 레닌 모레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그는 어산지를 영원히 보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이번 체포 역시 에콰도르 정부의 협조 아래 이뤄졌다. 이제 어산지의 신병처리는 국제사회의 관심거리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표방하며 투명성을 상징하는 이 인물은 미국에서는 컴퓨터 해킹 공모 혐의 등을 받고 있고 스웨덴에서는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다. 양국 모두 어산지를 보내달라며 요구하고 나섰다. 이 다툼 역시 길어질 수 있다. 영국 로펌인 ‘킹슬리 내플리’의 레베카 니블록 변호사는 ‘뉴욕타임스’에 “간단히 끝날 싸움이 아니다. 최소 1년 반 이상이 걸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을 매번 곤경에 빠뜨리다
   
어산지가 국제적 도망자가 되기 이전, 그는 정보 투명성을 위해 급진적인 실험을 해왔다. 위키리크스의 존재가 처음 눈에 띈 건 2007년 아프리카 케냐에서였다. 2007년 위키리크스는 케냐 대통령의 부정부패와 국민에 대한 폭력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이 영향으로 당시 케냐 대선 투표율이 무려 10%나 뛰어오르기도 했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발 정신을 높이고 권력의 불법성을 폭로하는 새로운 폭로사이트에 세계는 높은 평가를 줬다. 케냐 건으로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이 주는 ‘미디어상’도 받았다.
   
위키리크스를 이끄는 어산지의 이름이 세계에 등장한 건 2010년의 폭로 때문이었다. 위키리크스는 2010년 4월 미군이 2007년 이라크 시민을 살상하는 묘사를 한 그래픽 비디오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을 공개했다. 사망자에는 기자도 포함됐다. 2010년 7월에는 7만6900건의 ‘아프간전쟁 일지’를 공개했고 곧 이어 약 40만건에 달하는 이라크전쟁 기록마저 세상에 알렸다. 미국 정부와 군 당국이 발칵 뒤집어진 건 당연했다.
   
절정은 2010년 11월의 사건이었다. 11월 28일 위키리크스는 미국이 외교관계에 사용하는 미 국무부 외교문서(diplomatic cable)를 대량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케이블게이트’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전 세계를 망라할 만큼 대상국이 광범위했다. 엄청난 양의 외교 문건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는 것, 그 자체가 화제였다. 문건들 자체에 임팩트가 있는 건 아니었고 대부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교담당자들이 기록한 정세 분석이나 인물평 등이 정보 보고 형태로 다뤄졌다. 여기에는 우리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정보도 더러 있었다. 2008년 9월 미 정부 관계자가 미 국무부로 보낸 문서는 “김정일은 세 명의 아들들에게 정권을 물려주기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김정철과 김정은은 경험이 부족해 국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작성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썼다. “장남인 김정남은 너무 여자를 좋아해서 문제가 있으며, 차남인 김정철은 게임에 빠져 있어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김정은은 정치를 하기에 아직 너무 이르다.” 세계 초강대국의 상위 피라미드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비밀스러운 문서가 대량으로 유출됐기에 사람들의 호기심은 커졌다. 여기에 정부나 해당 인물들이 민감하게 대응할수록 미국은 더욱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2012년부터 시작한 어산지의 도피생활은 위키리크스를 잠시 위축시켰다. 2010년과 달리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2건의 폭로만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다시 활발해진 건 2015년부터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감청 활동 폭로가 이어졌다. NSA가 호세 지우마 브라질 대통령 등을 감청했으며 시라크, 사르코지, 올랑드 등 프랑스 전·현직 대통령 역시 감청의 대상이었다고 폭로했다. 독일도 미국의 감청권 안에 있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 56명, 독일 유력 언론 ‘슈피겔’ 역시 NSA가 감청해왔다”고 위키리크스는 공개했다. 2015년의 리스트에는 한국과 관련한 폭로도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이메일에 따르면 2013년 9월, 이탈리아 ‘해킹팀’이 ‘SKA(South Korea Army Intelligence)’를 도와 한 변호사의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는데 고객 명칭이 ‘육군 5163부대’였다. 국정원이 대외활동 때 사용하는 코드명이었다.
   


언론자유의 주인공 된 위키리크스
   
 ‘Dark moment for press freedom.’(언론자유의 어두운 순간이다.)
   
어산지가 체포되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트윗을 날렸다. 어산지와 비슷한 입장인 그는 2013년 미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행위를 폭로한 뒤 러시아에 망명 중이다. 어산지의 변호인인 제니퍼 로빈슨은 “이번 체포는 유럽과 전 세계 언론인에게 위험한 선례를 남기고 있다. 앞으로 미국에 관해 진실된 정보를 공개하는 언론인은 미 당국에 기소될 수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위키리크스는 폭로 활동을 통해 ‘이코노미스트’로부터 뉴미디어상을, 앰네스티인터내셔널로부터도 미디어상을 받았다. 변화한 온라인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라는 공인을 받은 셈이었다. 어산지 측은 만약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기소한다면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위키리크스와 협력해온 기자들 역시 도미노처럼 기소로 이어질 거라 주장하고 있다. CNN의 아티카 슈베르트 수석특파원은 “어산지에 대한 기소는 고발자가 비밀정보를 입수해 공개하는 과정의 교사와 공모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가 정보에 접근하는 것에 영향을 미칠 법정 투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향후 수년 동안 선례가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위키리크스를 언론으로 보지 않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위키리크스의 중립성에 대한 논란 때문인데 2016년 8월의 폭로가 영향을 줬다. 당시 미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이메일 수천 건이 해킹을 당했고 위키리크스는 이를 입수해 폭로했다. ‘이메일 게이트’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미 온라인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마지막 한 달간 각종 연설, 언론 인터뷰, 토론회 등에서 최소 164차례나 위키리크스를 극찬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이메일의 출처는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관된 해커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의 정치적 이익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의심으로 위키리크스 역시 영향력 감소라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오히려 위키리크스에 기회 될지도”
   
다만 위키리크스가 정보 공개와 저널리즘의 관계에 깊은 고민을 던진 건 사실이다. 지난해 9월부터 어산지를 대신해 위키리크스 편집장을 맡은 크리스틴 흐라프슨은 “저널리즘에서 위키리크스는 두 가지 일을 했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거대한 폭로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는 점, 다른 하나는 주류 미디어를 모아 함께 일하는 협업 방식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2010년 아프간전 폭로나 케이블게이트 때 위키리크스는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독일 슈피겔, 스페인 엘파이스 등 5개 언론사에 접근권을 줬고 이들 언론사들은 협업을 통해 문건을 기사화했다. 흐라프슨 편집장은 “이런 미디어 동맹은 파나마 문서(조세피난처의 역외 탈세를 폭로)에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협력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내부고발자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나름의 기여를 했던 이 폭로 사이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산지에 대한 의존이 컸던 곳이니 이제는 소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스트라이샌드 효과’ 때문에 부활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는 온라인상에서 어떤 정보를 숨기거나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돼 당초 기대와 반대로 정보가 확산되는 역효과를 뜻한다. 사이버 보안회사 렌디션 인포섹의 제이크 윌리엄스 대표는 “이번 어산지 체포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위키리크스를 인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필더 미 외교협회(CFR) 보안담당자는 “어산지를 일종의 순교자로 활용해 위키리크스의 규모를 키우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IT 매체인 ‘더넥스트웹’은 “어산지 체포 뒤 위키리크스에 대한 비트코인 기부금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4월 11일까지 위키리크스가 받은 비트코인 기부금은 약 1만5000달러(1700만원) 정도인데 이 중 3분의 2가 어산지 체포 뒤에 모인 자금이다.

등록일 : 2019-04-24 09:42   |  수정일 : 2019-04-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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