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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부른 新빈부격차 ‘에어 디바이드(Air Divide)’

청정공기조차 빈익빈부익부?

⊙ ‘공기 시스템’ 때문에 10억원대 세컨드하우스 계약하는 사람들
⊙ 1500만원짜리 ‘폐 세척 관광’, 11만원짜리 공기 ‘한 병’
⊙ 부직포 마스크 거꾸로 쓴 쪽방촌 A씨 “빨아서 며칠째 쓴다”
⊙ 경로당 노인들 “공기청정기 설치 후, 귀가 시간 늦어졌다”
⊙ 전문가들 “실효성 없는 불안 회피 정책뿐, 貧者 위한 대책은 放棄”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2019-04-24 09:42

마치 철옹성 같았다. 서울 강남의 한 모델하우스. 재벌 회장들이 사는 걸로 유명한 ‘T하우스’가 새롭게 선보이는 ‘펜트하우스 R’이다.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따로 홍보는 안 한다. 모델하우스지만 구경도 쉽지 않다. 예약해서 담당자를 배정받은 후 며칠을 기다려야 둘러볼 수 있다.
  
“어떤 루트로 오셨나요.” 지난 4월 3일 찾은 모델하우스 카운터에선 예약자 명단을 꼼꼼히 확인했다. 잠시 라운지에서 대기하니, 검정 슈트를 빼입은 담당자 정씨가 나타나 자신을 소개했다.

집 내부는 대리석 마감, 아치형 계단, 높은 층고로 유럽의 고성(古城)을 연상시켰다. 로비에는 컨시어지(관리인)가 상주하며, 입주민은 발레파킹, 푸드・보디・마인드・메디컬 케어 서비스를 받는다. 정씨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이곳이 내세우는 건 오직 실내공기”라고 했다. 국내 최초로 ‘퍼펙트 에어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했다.
 
“이곳은 공기부터 다른 에덴 파라다이스입니다. 산소발생기를 통해 집 안에 고순도 산소와 산소수(水)를 제공하죠. 대기(大氣)는 산소 21%, 질소 78%, 기타 1%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산소만 선택적으로 분리해 하루 30L 이상 공급하는 최첨단 시스템입니다. 집 안에 산림욕 수준의 산소 농도가 늘 유지되는 겁니다.”
 
정씨는 “단순 환기(換氣)의 수준을 넘어 초미세먼지를 99.9% 차단해, 세상에 없던 무결점 공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 분양률은 약 90%다. 정씨에 따르면 공기시스템만 보고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미 호텔식 서비스는 그들에게 식상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계약자는 대부분 3040 싱글 혹은 실버 세대”라면서 “가족 단위보다는 1인 가구가 세컨드하우스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분양가는 전용면적 72.81m2(약 20평) 기준, 15억원이다.

10억원대 집을 세컨드하우스로 삼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모델하우스에서 팸플릿을 받아 나오는 40대 여성과 잠깐 얘기를 나눠봤다. 그는 “어르신이 T하우스에서 사는데, 그 대신 세컨드하우스를 알아보러 왔다”면서 “이제 집 선택의 기준이 서비스와 각종 부대시설이 아니라, 공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어르신’이 산다는 T하우스는 가장 비싼 집이 100억원으로 몇 년째 ‘최고가 아파트’로 꼽힌다.
 
 
  초호화 아파트 짓는 사람들
 

연신 물만 뿌리던 서대문구 작은 공사 현장의 작업자. 그는 미세먼지 가이드라인을 모른다고 했다.

이 펜트하우스는 오는 2022년 완공된다. 모델하우스는 강남에 있지만, 광진구에 들어선다. 지난 4월 5일 오후 3시. 건대입구역 인근 펜트하우스의 공사 현장을 찾았다. 이제 막 착공한 듯했다. 높은 바리케이트에 펜트하우스의 럭셔리한 실내 모습이 도배돼 있었다. 그 안에서는 안전모를 쓴 약 10명의 작업자들이 한창 터 다지는 작업에 열중이었다. 흙바닥 위로 살수차가 왔다 갔다 했다. 입구 쪽에는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작업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없었다.
 
이날 광진구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는 각각 194㎍/㎥, 23㎍/㎥였다.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은 ‘최악, 절대 나가지 마세요’라고 경고했다. ‘최악’은 8단계 중 가장 나쁜 단계다.
 
유도봉을 들고 살수차를 인도하는 A씨에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하자, “마스크 쓰고 작업해봤는데 정말 답답하다. 날이 따뜻해져서 마스크 하면 숨도 못 쉴 것”이라고 했다. 물뿌리는 작업을 하던 B씨는 “공사장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원래 천식과 비염을 달고 산다”면서 “요즘 같은 날엔 더 자주 물을 뿌려주는 수밖에 없다. 물 튀기니까 얼른 피하라”며 손을 휘저었다.
  
공사 현장은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비산먼지도 많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6일, ‘옥외작업자를 위한 미세먼지 대응 건강보호 가이드’를 발표했다. 건설·조선 노동자, 환경미화원 등은 물론 외부 공기에 노출된 실내 근로자를 포함한다. 가이드는 미세먼지 150㎍/㎥ 이상이나 초미세먼지 75㎍/㎥일 경우 사업주의 마스크·휴식 여건 제공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A씨는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공지는 봤는데, 그걸 다 지키면서 어떻게 일하느냐”면서 “지난 3월 초에는 미세먼지 저감 조치라고 해서 작업시간을 반으로 줄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하면 공사일정을 맞추기 어렵다”고 성토했다.
  
이날 이동하면서 몇몇 공사 현장을 더 볼 수 있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 등 규모가 작은 공사였는데, 마찬가지로 마스크 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업자 C씨는 “우린 그런 가이드라인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들이 마스크 없이 연신 기침하며 짓는 펜트하우스에는 2022년 하루 종일 삼림욕을 즐길 사람들이 입주한다.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마스크를…”
 

인천 만석동의 쪽방촌. 이곳에서 만난 한 노인은 마스크를 끼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하늘 아래서, 어떤 이는 먼지를 직격타로 맞는데 어떤 이는 ‘청정공기’를 마신다. ‘맑은 공기’가 특권이 된 시대다. 미세먼지가 부른 빈부격차,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 3월 15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세먼지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연간 4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월 소득별 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한 개별 지출액을 살펴보니, 600만원 이상 가구는 2만5625원을 쓰는 한편 200만원 미만 가구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1만593원을 썼다. 특히 30~40대 고소득 가구에서 미세먼지 대응 비용을 많이 지출했으며, 50대 이상 저소득가구에서는 지출액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모집단(母集團)의 범위를 ‘이곳’으로만 한정하면, 한 달 지출액이 ‘0’에 수렴할 수도 있다. 인천 만석동의 한 쪽방촌. 피란민 정착지였다가 1980년대 들어 도시 빈민 노동자들이, 경제외환위기(IMF) 이후에는 실직자와 노숙인 등이 모여 살게 된 인천의 대표 달동네다. 모 소설의 배경이 돼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주민들의 사정은 나아진 게 없다.
  
쪽방촌을 찾은 지난 3월 27일, 인천 동구의 미세먼지 농도는 90㎍/㎥ 안팎을 오갔다. ‘상당히 나쁨’ 수준이다. 3월 초 한때 이곳의 미세먼지는 200㎍/㎥ 이상까지 치솟았다. 마을 담벼락에 기대 주민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한 어르신이 허리에 손을 얹고 느리게 지나갔다. 마스크는 없었다. 어르신은 손사래를 치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근처 화장실 갈 때나 나오지 멀리 가지도 않는데 뭣 하러 (마스크를) 쓰겠느냐. 얼마나 오래 살려고” 라 했다. 쪽방촌 사람들은 공동화장실을 쓴다.
  
그 뒤로 쪽방촌에는 한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마을 어귀 쪽으로 걸어봤다. 드디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가 아닌 푸른빛이 도는 일회용 의료 마스크였다. 이마저도 코 부분이 턱 쪽으로 향하게 쓰고 있었다. 윗부분이 반쯤 흘러내려 콧구멍이 다 드러나 있었다. 할머니는 “밖에 나올 때 잠깐 쓴다. 잠깐씩 쓰는 거라서 한두 번 쓰다 빨고 그런다”고 했다. 이 마스크는 부직포 재질이다. 빨면 못 쓴다. 이종태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경제적 취약계층은 미세먼지 생산에 대한 책임이 그렇지 않은 계층에 비해 덜하지만, 정작 더 많은 피해를 받고 있다.”
  
그러고 보니 쪽방촌 사람들은 차가 없어 매연 뿜을 일도, 공기청정기로 전기 쓸 일도 없다.
  
경로당과 타운하우스
  
지난 4월 5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한 경로당. 이곳엔 최근 경사(慶事)가 났다. 경로당의 회장 김씨는 “취재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다들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20명 남짓 회원들은 대부분 80대이고 최고령자는 93세다.
  
경사는 다름 아닌 구청 지원으로 공기청정기를 두 대나 들인 것. 실내는 30평(99m2) 정도 크기였다. 부회장 임씨의 말이다.
  
“좋다마다요. 그전에는 실내가 뿌연 게, 아휴 말도 마요. 점심 먹고 나면 눈이 아파서 못 있었어요. 집에 일찍 갔지. 머리도 아프고 그랬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오후 5시까지 있다 간다니까요. 우리 경로당 너무 좋아요. 마스크도 비치돼 있어서 쓰면 돼요. 일회용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까워서 한 서너 번 쓴 다음에 버려요.”
  
김 회장은 “공기청정기 설치 후엔 다들 병원도 적게 가는 것 같다”면서 “이전에는 할머니들이 감기에 자주 걸렸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린이집에는 미세먼지 커튼을 쳐준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런 걸 해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며 웃었다. 
  
한편 같은 연배지만 조금 다른 노후를 보내는 이도 있다. 이들은 ‘노인’이라는 명칭 대신 ‘실버’로 불린다. 한때 건설사 임원을 지낸 황모(82)씨는 은퇴 후 서울 마포구에 건물을 지어 한동안 임대업을 했다. 그러다 최근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영동지방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평소 기관지가 안 좋았는데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지경”이라면서 “아이들도 모두 해외에 정착했고,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속초의 한 타운하우스를 분양받았다. 전용면적 112.35m2(약 34평) 기준 분양가는 약 7억원이다. 이 곳의 특징은 전 세대에 알칼리 천연수가 공급돼 집 안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단지 중앙에는 분수정원도 마련된다. 이 타운하우스 홍보 관계자는 “속초는 미세먼지, 대기오염의 걱정이 없는 청정지역인데다 서울 양양고속도로, 동서고속화철도 개통 예정 등의 호재로 주목받아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도곡 래미안, 도곡렉슬, 래미안 대치팰리스, 대치아이파크, 청담자이, 라테라스청담 등 고급 아파트 입주자들이 세컨드하우스로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역 내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준철 공인중개사는 “실제로 은퇴 세대를 중심으로 영동지방 내 세컨드하우스 문의가 전년대비 약 200% 상승했다”면서 “미세먼지, 북한 관련 호재로 속초는 30평대 바다뷰 신축이 보통 3억원 이상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와 북유럽의 차이
  
비단 은퇴자뿐만이 아니다. 여유 있는 젊은 층 중에는 아예 이민도 고려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둔 주부들이 그렇다. 캐나다 코퀴틀램에 거주하는 이민 10년 차 이진주(38)씨는 “이민자 커뮤니티 내에서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캐나다 이민에 대해 많이 묻는다’는 말이 왕왕 들린다”면서 “한국의 공기가 그 정도로 심각하냐”고 되물었다. 고려이민공사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주부들이 주로 아이 교육과 관련한 상담을 주로 했는데, 이제는 미세먼지가 이민의 주효한 동기가 됐다”면서 “최근 2년 사이 미주 쪽 상담 고객만 150~200%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치동 주부만 가입할 수 있다는 한 커뮤니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영어유치원’ 관련 글이 많았지만 이제는 판도가 바뀌었다. 이민, 해외 한 달 살기 등 피신(避身) 관련 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생후 15개월 된 아기를 둔 주부 A씨가 남긴 글이다. 그는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유학했다고 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문센(문화센터)도 못 가고 집에만 있다 보니 답답하다. 4월에 브르타뉴에서 아이와 한 달 살기를 하려 한다. 긴 비행시간이 두렵지만, 한번 고생으로 한 달 동안 깨끗한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하니 못 할 것도 없다. 4월에 아이들과 브르타뉴 강변에서 함께 트로티네트(trottinette・외발 롤러스케이트) 타실 분은 리플 달아주세요.”
  
이들 사이에서는 ‘한 달 살기를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고 한다. 대치동 A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 안은지(39)씨는 “보통 여유 있는 집들은 1000만원을 들여 북미, 북유럽의 섬으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다”면서 “한편 가고는 싶은데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3분의 1 금액으로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 같은 데로 많이 간다”고 했다. 실제로 주부 커뮤니티에는 ‘조호르바루 한 달 살기 후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주부는 “생후 19개월 된 쌍둥이 데리고 다녀왔다. 4주 머무는데, 2주는 물갈이다 뭐다 해서 고생했다. 그래도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수영장과 레고랜드 회원권을 끊고 마음껏 이용했다. 물가도 엄청 싸다. 한국에 있으면 한 달 베이비시터 비용만으로 200만원은 쓰지 않나.”
  
안씨는 “믿기 어렵겠지만 북미나 유럽의 섬 같은, 비싸고 흔치 않은 지역으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 후기를 듣기 위해 혈안인 주부들도 많다”면서 “그곳의 거주지, 맛집, 생활 팁에서부터 아이를 위한 레슨 프로그램 등 네트워크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자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를 전문으로 상담해주는 경험자의 연락처도 돌고 있다는 게 안씨의 귀띔이다.
  
1500만원짜리 공기청정 투어
 

대치동 주부 안씨가 이야기한 영국산 11만원짜리 ‘공기 병’. 한동안 일부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이들은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청정지역을 찾는다. ‘VVIP를 위한 맞춤형 투어’를 표방하는 Z 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공기청정 투어 쪽으로 무게가 재편되고 있다. 한 고객은 ‘아이슬란드 얼음 동굴 속 세계 5대 온천 중 하나인 블루라군에서만 10일을 머무는 프로그램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다”고 했다. 아이슬란드는 전 세계에서 미세먼지 수치가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힌다. 이 관계자는 “고객 요청대로 일정을 짜봤더니 2인 기준 1500만원이 나오더라”면서 “일찌감치 중국에서는 ‘폐 세척 관광’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여행 트렌드가 중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도 했다.
  
굳이 아이슬란드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마트에서도 ‘공기 질’만을 위해 1000만원을 쓸 수 있다. 시중의 공기청정기는 10만원대부터 7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일명 ‘청담동 공기청정기’라 불리는 이 제품은 독일 N사에서 만든다. 주문제작 방식으로 소비자가 외관 디자인을 직접 고를 수 있다. 제작과정의 50% 이상이 수작업이다.
  
오는 5월에는 LG에서 냉난방, 공기청정, 가습, 제습 기능을 모두 장착한 1000만원대 제품도 선보일 것이다. 마스크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1000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영국산 마스크 ‘프레카 플로우’는 개당 10만원이다.
  
아예 공기를 사 먹는 사람도 있다. 주부 안은지씨는 “혹시 ‘이더(Aethaer)’라고 들어봤느냐. 영국산 청정공기를 병에 담아 판매하는 건데,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 일전에 한 엄마가 그걸 다른 엄마 집들이 선물로 줬는데, 한동안 동네에서 화제가 됐다”고 했다. 검색해보니, 공기가 담겨 있는 딸기잼만 한 병(580L)을 파는 건데, 가격이 80파운드(약 11만원)였다. 2016년 영국의 한 청년이 공기 나쁜 동아시아 국가의 ‘부자들’을 타깃으로 시작한 사업이란다. 출시 직후부터 꾸준히 매우 잘 팔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빈곤층, 같은 미세먼지에도 더 큰 피해
  
미세먼지는 이제 국가적 이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피해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경각심을 못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홍윤철 서울의대 환경보건센터장의 설명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먼지가 사람을 죽인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었어요. 사회 전반적으로 경각심이 많이 생긴 지금도, 대부분이 ‘미세먼지가 몸안에 돌기 때문에 안 좋다’라고만 인식하죠. 먼지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 미세먼지는 화학물질 덩어리예요. 이 화학물질 덩어리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가고, 혈관에 침투해 혈액과 섞이게 되는 겁니다.”
  
홍 교수는 “WHO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영향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타난다. ‘급성’이라고 하면, 미세먼지가 심한 날 갑자기 사망하는 걸 말한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1만2000명 정도가 만성으로 사망하고, 급성 사망자는 1000명으로 집계된다. 이 중 38%가 심장 질환, 36%가 호흡기 질환, 뇌혈관 질환이 26%”라고 했다.
  
더욱이 문제는, 같은 농도의 미세먼지라도 빈곤층이 겪는 피해가 더 크다는 사실이다. 이종태 고려대 보건의학과 교수는 “‘의료박탈지수’가 미세먼지라는 환경변화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면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대안이 절실하다고 했다.
  
“동일한 미세먼지에 노출됐을 때,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의 시민들이 건강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을 여러 연구로 밝혔습니다. 개인적인 빈곤뿐만 아니라, 빈곤한 지역이 있습니다. 주로 커다란 산업단지, 제조업이 있는 공장 주변인데, 이러한 지역의 경우 미세먼지 농도가 같더라도 그 구성 물질의 독성이 훨씬 강한 경우가 많죠. 개인의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을 지표로, 미세먼지로 인해 발생하는 천식입원율 등 건강 피해와 사망률을 살펴봤더니 저소득층이 수치가 더 높았습니다.”
  
취약계층에 ‘저소득층’이 빠져 있다
  
지난 4월 1일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미세먼지법) 시행령’이 시행됐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영유아와 노인, 임산부, 기저질환자로 한정했다. 경제적 빈곤 계층, 즉 저소득층은 빠져 있다.
  
이 교수는 이에 “환경 불평등 관점에서 당연히 우선적·집중적 관리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이 배제된 것”이라면서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항목이 방기된 것을 보면, 사실상 국가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에서 한정하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마저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원 에코맘 대표는 “현재 정부는 공기청정기 설치, 미세먼지 측정기 설치 등의 해결 방안만 내놓고 있다”면서 “이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 시민들의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회피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환경운동가 또한 “공기청정기를 가동시키는 전기는 결국 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다 쓰고 버린 마스크는 결국 소각해 대기오염을 가중시킬 텐데 과연 이것을 ‘미세먼지 대책’이라고 봐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는 먼지를 한번 걸러주기 때문에 확실히 효과는 있어요.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특히 마스크의 경우, 꼈을 때의 불편함이 외려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어떤 화학물질로 구성됐느냐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또 다를 수 있어요. ‘배출원’의 정보가 중요한 이유죠. 하지만 아직 배출원에 대한 정보와 데이터가 없는 상태입니다. 마스크, 공기청정기 배급보다 발생원을 파악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둬야 합니다.”
  
기존에 내놓은 대책의 유지・점검마저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영기 수원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대기오염 관리 정책에서 제대로 된 이행계획과 이행평가는 정책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부분을 가장 소홀히 하고 있다”면서 “담당 공무원들이 짧은 업무 담당 기간에 비효율적 정책 지표에 매달려서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대기관리정책의 이행과 평가가 부실해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장 교수는 또 “국내 미세먼지 개선은 획기적인 대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대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4월 말, 6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중 2조원가량은 미세먼지 대책 위주로 투입할 예정이다. 이종태 교수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피해 저감을 위한 노출 감소 방안에 대한 매뉴얼과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미세먼지 예・경보 기초 데이터를 준비하고, 저소득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공공 셸터(shelter) 같은 인프라에 기초투자해두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웃는 이유
  
서울 답십리동의 한 임대아파트. 이곳에는 기초수급자 김순희(83・가명)씨가 혼자 산다. 밥은 단지 내 경로원에서 해결한다. 매주 서너 번 물리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것 외에 멀리 외출은 잘 안 한다. 동대문구청의 현진선씨는 지난 3월 20일, 김씨 할머니를 찾았다. 마스크 20개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보급을 받기 전 김씨는 한 번도 마스크를 구입한 적이 없단다. 진선씨는 “근 2년 동안 매달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뵙고 있는데, 갈 때마다 딸처럼 반기신다”면서 “꼭 쓰고 다니시라고 하니까 그러겠다고 하셨다. 평소에 옆에서 이런 얘기를 해줄 젊은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근 마스크 배급 봉사활동을 했다는 한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저소득 소외계층 분들 대부분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면서 “그들은 ‘이제부터 건강을 챙길 수 있겠다’ 싶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반가운 거더라”고 말했다.
  
한때 키 작은 사람에게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있다. 아래 공기는 어떠냐고. 이제 이 농담은 할 수 없게 됐다. 누군가에겐 너무 서러운 말이기 때문이다.

등록일 : 2019-04-24 09:42   |  수정일 : 2019-04-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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