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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설] 설은 구색 맞추기용 진짜 명절은 김일성·김정일 생일

글 |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평안북도 신의주
필자의 다른 기사 2016-02-06 오전 9:04:00

▲ 설 명절을 맞이한 북한 평양 거리. photo 조선일보
나는 1979년 7월 27일 서부지역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왔다.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철책에는 3300V의 고압 전류가 흐르고, 그 주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었다. 4㎞가 넘는 거리의 비무장지대를 뚫어야만 남한으로 갈 수 있었다.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다만 나는 북한에서 군인으로 9년 동안 복무했고, 부대 위치는 남쪽에서 바라볼 때 서부전선 판문점 우측 지역이라 그쪽 지리는 꽤 빠삭했다.
   
   그렇지만 탈출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월남하는 걸 발각당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나의 동기들은 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 자명했다. 나는 그렇게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휴전선을 넘었고, 결국 남한으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어느덧 내가 북한을 탈출한 지도 벌써 36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인 설이 오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친다.
   
   이제 곧 있으면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찾아온다. 나는 20대 중반에 남한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설을 떠올리면 10대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북한의 설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 보려 한다. 나는 북한 사회주의가 성장기를 보내던 1960년대 중반부터 설 명절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살았다. 당시 내 나이는 겨우 10대를 막 넘어선 철부지였지만 연중 최대의 민속 명절인 설과 추석 명절 분위기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김일성의 생일은 거의 아는 사람들이 없었고 누가 말하거나 언론에서 강조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동네 외진 곳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소를 잡고 있었다. 내일이 설이어서 어른들이 소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친구들과 소 잡는 모습을 구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뚜레를 꿴 소를 나무에 바짝 매어놓고 힘 센 장정이 무거운 도끼로 소의 정수리를 몇 번 내려치자 금방 소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어 네 명이 소의 다리를 한 개씩 붙잡고 껍질을 벗기려 했다. 그런데 뒷다리를 잡았던 한 명이 땅바닥에 보기 좋게 나자빠졌다. 소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을 걷어찬 것이다. 그 친구는 갈비뼈가 부러져 곧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소는 잠깐 사이 고깃덩어리로 변신해 주민들의 설날 상에 올라갔다.
   
   1967년, 노동당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던 박금철과 이효순을 비롯한 갑산파가 숙청되고 봉건유교사상이 비판받기 전까지 북한의 설 풍경은 풍요로웠다. 제사상을 차리고 한복 입고 절하는 모습도 거의 그대로였다. 하지만 김일성은 갑산파 숙청을 시점으로 전통과의 단절을 더욱 재촉하면서 북한 사회주의를 몰락의 길로 이끌어 갔다.
   
   1970년에 들어서며 북한에서 명절날 소를 잡는 모습은 더 이상 구경하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군에 입대한 후 다행히 특수부대에 배치되는 바람에 휴전선을 넘어오기 전까지 아주 가끔 소고기를 먹으며 지낼 수 있었다. 북한에서 전통의 단절은 김일성의 유일사상, 주체사상과 연관되는 문제이며 동시에 경제사정의 악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즉 제아무리 유일사상을 강조해도 경제형편만 좋다면 굳이 전통 명절을 그렇게까지 제약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1989년부터 북한에서 금지되었던 추석과 설 명절이 다시 부활하였다. 북한도 전통을 마냥 단절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전통 명절을 복원하며 민족주의를 체제유지 수단의 하나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귀성객이 자유롭게 오가거나 떡 치고 소 잡는 풍경까지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 경제는 이미 주저앉기 시작하였기에 부활한 명절은 그저 하루 쉬면서 쌀밥을 먹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른바 ‘민족최대의 명절’로 지정된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의 생일이 연중 최고의 명절로 자리 잡으면서 전통 명절은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노동당 누른 장마당
   
   남한으로 와 보니 설 명절은 말 그대로 ‘민족 최대 경사의 날’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하루이틀 쉬는 것도 아닌 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아! 이것이 명절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선물도 놀라웠다. 나는 처음에는 친척이 별로 없어 많은 선물을 받지 못했지만 요즘은 설 즈음 들이닥치는 선물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대통령 선물을 비롯해 많을 때는 20개 이상의 선물을 받고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남에게 선물을 주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고받으니 서로 얼마나 감사한가. 북한에서 설 명절 때면 주는 선물은 공책이나 연필 등 학용품이 많았고, 세배를 정확히 한 기억은 별로 없다. 따라서 세뱃돈을 받아본 기억도 별로 없다.
   
   또한 음식은 어떤가. 북한에서는 주로 집에서 설음식을 차려 먹는데 여기 한국에서는 사 오는 음식이 더 많은 것 같다. 한국 가정에서는 굳이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마켓과 백화점에는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진 음식이 가득하다. 평양에서도 요즘 설날이면 해당회관 등에 손님이 차고 넘치지만 불고기 4인분에 200달러가 넘고, 대동강 맥주 1병에 3달러가 넘다 보니 일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북한군 대대장 월급이 겨우 5000원인데 1달러가 북한 돈 8700원이니 어느 정도 비교가 될 것이다.
   
   북한의 빈부 격차는 천지 차이처럼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머리를 쳐들고 있는 신흥부자들은 기득권 권력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장마당 경제의 발전으로 보통 사람들도 어느 정도 돈벌이에 나서면서 북한에는 양당 체제, 즉 ‘노동당’과 ‘장마당’이 지배한다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규모상으로는 노동당이 장마당을 이길 수 없다. 규모 경쟁에서 이미 장마당은 노동당을 눌러 버린 셈이다.
   
   다가오는 5월, 북한이 무려 36년 만에 당 제7차 대회를 소집해 새로운 경제발전 노선을 제시할 텐데 과연 시장경제의 비중을 얼마나 인정하고 정책에 수용할지 관심이 무척 크다. 부디 북한도 7차 당 대회를 계기로 개혁과 개방으로 전환하여 북한 주민들이 제대로 된 설 명절을 즐기며 살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북한 주민들도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열차와 승용차를 타고 고향으로 찾아가는 날이 머지않아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오면 나도 온 가족을 차에 태우고 내 고향 신의주로 달려갈 것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평안북도 신의주
등록일 : 2016-02-06 오전 9:04:00   |  수정일 : 2016-02-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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