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SBS 연개소문, MBC 선덕여왕/무신 드라마 장면 캡처

세계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주연 이정재 못지 않게 인상 깊은 연기로 주목받은 배우는 '깐부 명대사'를 남긴 '일남' 역의 오영수다. 1944년생으로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배우 오씨는 본래 연극배우 출신이다.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데뷔한 그는 연극 '리어왕' '리차드 2세' '3월의 눈'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에 출연했다. 필자의 경우 2015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아버지와 아들'에서 주연 바실리로 열연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여전히 왕성한 '연기 열정'을 보여주며 연극 무대에서 현역 배우로 활동 중인 오씨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영화 '동승'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에서 주로 노승(老僧), 큰스님 역을 맡았던 그는 TV 드라마에서도 스님 전문 배우로 활약했다. 특히 사극에서 비범한 도력(道力)이나 명성을 지닌 고승(高僧)을 연기한 경우가 많았다.

오씨는 1980년대 '제1공화국' '조선왕조 오백년' 등에서 단역을 맡다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사극 속 승려로 등장했다. 2006년 SBS '연개소문'에서는 선인(仙人)에 가까운 신라의 고승 '난승(難勝)'으로 분했다. 난승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 열전에 기록된 인물로, 611년(진평왕 33) 신라 화랑 김유신이 17세 되던 해에 삼한일통의 뜻을 품고 중악석굴에 들어가 재계(齋戒)하고 하늘에 고하여 4일간 맹세하자 홀연히 나타나 비기를 전해줬다고 한다.

이후 2009년에는 MBC '돌아온 일지매' '선덕여왕'에서 각기 '열공스님' '월천대사' 역을 맡았다. 당시 인터넷신문 '더팩트'는 오씨 인터뷰 기사에서 "'선덕여왕'에서 월천대사, 오영수는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출연 횟수는 적지만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며 "과거 '사담함의 매화' 상징으로 미실의 권력의 핵심이었고 지금은 덕만이 공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라고 평했다. 오씨는 인터뷰에서 "월천대사는 천문학자이고 과학자다. 승려일 뿐 아니라 논리성을 가져야 하는 사람인 것"이라며 "정치 권력과 떨어져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월천을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 톤은 낮지만 힘 있게 가려고 했고 표정도 흔들림 없이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불교극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승려 역을 맡게 되더군요. 승려 역을 할 때 부담이 없고 친밀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스님들이 쓰시는 화두나 불교계 사상이 잘 맞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 명동 성당 근처에서 불교 사상이 짙은 모노드라마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수녀 10명 정도가 관람을 하러 오더니 며칠 후 약 30여 명의 수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 지나자 수녀 한 분이 명동성당에 초청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불교극이지만 그 안의 의미가 좋다면서요. 그때 알았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마음 속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또 연극이 곧 종교와 다름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2012년에는 MBC '무신'에서 '수기대사'로 분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말기 최충헌의 가신(家臣)으로 재상(宰相) 문하시중에 오른 김준(김인준)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로, 원래 2000년대 초 KBS에서 시기적으로 앞선 '무인시대'의 후속작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당시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으로 KBS 사극 전성시대를 연 이환경 작가의 작품인데, 고려시대 사극 1탄인 '태조왕건' 이후 이 작가가 쓴 '제국의 아침'이 흥행을 이어가지 못하고 후속작 유동윤 작가의 '무인시대' 역시 비교적 빛을 발하지 못하자 '잠정 중단'됐다가 세월이 흐른 후 MBC에서 방영된 것. '용의 눈물' 이성계로 유명한 배우 김무생의 아들 고(故) 김주혁의 유작 중 하나로 기억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오씨가 맡은 배역 수기대사는 고려시대 불법(佛法)의 힘으로 몽고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제작된 팔만대장경 사업을 주관한 개태사 승통(僧統)이다. 당시 수기대사는 정교한 팔만대장경 제작을 위해 불교 경전을 망라하는 일체경(一切經)인 '대장경' 내용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 등을 참고해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오씨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서 스님 전문 배우가 됐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제가 불교 사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점점 외모가 스님을 닮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불교의 어떤 점에 관심을 가졌나'라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그건 '자신을 비우고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산길을 걷던 나그네가 예쁜 꽃을 봤을 때 젊은 사람은 그 꽃을 꺾어 가져오고, 중장년은 꽃을 캐서 자기 집 정원에 심고, 더 나이가 들면 그 자리에서 본 뒤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을 가진다고 해요. 일흔 살이 넘으니 그렇게 그냥 두고 다 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도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