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빨간책방’에서 그의 첫 사진전이 열렸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최갑수(43) 여행작가가 최근 13번째 여행서를 펴냈다. 첫 여행서인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예담·2007)은 12만부가 팔리면서 그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그는 해외 관광청에서 모시고 싶어하는 여행작가 1순위다. 잡지·사보에서도 여행 기사를 청탁하는 작가 섭외 1순위다. 주간조선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글을 맡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품질이 확실하다. 글은 물론이고 사진까지 완벽하게 납품한다. 마감도 빠르다. 게다가 청탁의도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글을 쓴다. 그가 각종 매체에서 주문받은 여행 기사는 한 달이면 평균 400~500매 분량이다. 매달 책 한 권씩 써대는 셈이다. 기사를 쓰려면 출장을 다녀와야 하니 한 달에 절반은 출장 중이다. 언뜻 보면 여행 실컷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팔자 좋은 직업은 없어 보인다.
   
   최근 여행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행작가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도 늘고 있다. 책 출간에 맞춰 그의 첫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빨간책방 카페’에서 그를 만나 여행작가로 사는 법을 들어봤다. 그도 여행작가 아카데미에서 가끔 강의를 하는데 40대 이상 수강생도 많고 60대도 있다고 한다. 다른 삶을 도모하며 퇴근 후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한다.
   
   
   국내 최고 여행작가가 되기까지
   
   그는 자신의 팔자가 에로영화 감독인 줄 알았단다. 20대 후반 그는 출판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취재 때문에 만난 서울 옥수동의 한 역술인이 그를 보더니 ‘여관과 필름’이 보인다고 하더란다. 그땐 여관과 필름이 에로영화가 아닌 여행작가를 예견한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스포츠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문학·출판담당 기자를 했다. 작가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영 힘들었다. “인터뷰를 하려면 질문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도통 사람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맡은 것이 여행 담당이었죠. 나무랑 돌하고 이야기하면 되니까. 처음엔 운전면허증도 없었어요. 300만화소 디지털카메라가 막 나온 때였는데 어떻게 작동하는지조차 몰랐어요.”
   
   중앙일보에서 만든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 창간멤버로 옮겨 2006년 6월까지 근무하고 월급쟁이 생활은 끝을 냈다. 퇴직금 200만원을 들고 나온 그의 첫 달 원고료 수입은 20만원이 전부였다. “당시 계산해 보니 3인 가족 한 달 생활비로 200만원은 있어야겠더라고요. 20만원에서 200만원이 되기까지 7개월이 걸렸어요. 그나마 저는 빨리 자리를 잡은 겁니다. 기자 생활 하면서 전업작가가 될 훈련을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궤도에 오를 수 있었죠. 여행에 대한 수요도 폭발하기 시작할 때였어요. 신문 여행섹션이 등장하고 여행 콘텐츠를 원하는 곳이 많아졌어요.”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기자 시절 자동차 주행거리가 연 8만㎞에 이를 만큼 전국을 휩쓸고 다녔고, 마감전쟁에 길들여진 덕에 언제 어떤 주문이 들어오든지 맞춤 원고를 생산을 해 낼 준비된 작가였다. 시인으로 등단할 만큼 글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다.
   
   
   여행작가로 사는 법, 나의 영업 원칙은?
   
   전업작가 10년차, 현재 그의 수입은 웬만한 대기업 부장 연봉에 맞먹는다. 여행작가 중에는 강의료 수입이 많은 사람도 있지만 그는 원고료가 90%가 넘는다. 책 인쇄는 사실 큰 도움은 안 된다고 한다. 1만부가 팔려도 작가에게 돌아오는 돈은 1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럼에도 책을 내는 이유는 “나 살아있다”는 표시라고 한다. 해외 출장이 불시에 잡히는 일이 많다 보니 강의는 쉽게 약속을 할 수가 없다. 원고료로 그 정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년 새 물가는 몇 배가 올랐지만 원고료는 그대로다. 오히려 더 줄어든 곳도 있다. 10년 전 100만원을 벌기 위해 3건을 써야 했다면 요즘은 5~6건은 써야 한다고 한다.
   
   “여행작가는 유목민이나 다름없어요. 외장하드, 노트북 갖고 다니면서 출장지에서 원고 마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또 연예인처럼 끊임없이 인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여행 트렌드도 한 발짝 앞서가야 해요. 예전엔 인도·네팔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새로운 곳을 요구하잖아요. 파리 빵 기행, 도쿄 디저트 여행처럼 한발 더 깊이 들어가야죠.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어느 날 현장에서 사라집니다. 태백산 일출을 찍기 위해 영하 20도에 새벽 산을 올라야 하고 사막에서 며칠은 안 씻고도 버틸 수 있어야죠. 국내 출장도 2박3일 1500㎞ 운전은 보통입니다. 15㎏이 넘는 사진 장비 메고 다니느라 어깨, 허리병이 생기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원고 마감하느라 다음 날 토끼눈으로 ‘빡센’ 여행 일정을 소화해야 하죠. 새벽 3~4시면 일어나 원고 쓰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의 스마트폰 달력을 보니 마감일과 출장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3곳의 원고를 한꺼번에 마감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가 ‘영업 노하우’라면서 밝힌 두 가지가 있다. ‘납품기일 준수, 24시간 AS’이다. 잘 쓰는 것보다 마감 엄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 또 밤 12시에 에디터가 수정을 요구해도 웃으며 바로 AS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여행작가 또한 치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다. 겉만 보고 도전했다가 2~3년 만에 사라지는 여행작가도 숱하게 많다고 한다. “기업처럼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하지 않으면 금방 잊혀집니다. 적어도 배 곯으면서 이 바닥에서 5년은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여행작가의 또 다른 조건은 체력이다. 출장이 없는 때는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자전거로 체력훈련을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여행작가로 사는 것이 좋은데 50세 이후에는 다른 길을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가 지금껏 여행한 곳은 50여개국 200개 도시. 그를 만나면 누구나 던졌을 질문, ‘최고의 여행지’로 어디를 꼽는지 물었다. 해외는 그가 주간조선 2383호에 소개한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으로 한때 이민을 갈까 고민할 정도로 순박함에 반했다고 한다. 국내서는 제주도를 꼽았다. 해외를 다닐수록 제주도만큼 좋은 곳이 없더라고 했다.
   
   한때 슬럼프도 겪었다. 2년여 전 체코 프라하에서 소형차 한 대 값에 달하는 카메라 장비를 도둑맞는 등 불운이 겹친 데다 갑을도 아닌 병(丙)으로 살아야 하는 여행작가에 대한 회의가 심각하게 일었다. 카메라 장비를 다 팔고 여행도 한동안 안 다녔다. 일이 끊어지고 사람들한테 잊혀지는 것은 순식간이더란다. 5개월 만에 너무 사진을 찍고 싶어 소형 카메라를 장만했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 지쳤지만 여행만큼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이번 신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행복해지려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내게는 여행이다. 나는 여행이라는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