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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8년 예산안 관련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DB

문재인 정부는 국정을 어떻게 다르게 운영하려는가? 완벽한 국정 수행이란 있을 수 없으니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항상 제기되는 질문이지만, 현 시점에 이 질문의 중요성은 결정적이다. 정부가 ‘적폐청산’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는 듯 국정을 수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적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의 공식 발표나 설명이 없어 더욱 궁금한 것이다.
 
이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짐작하는 한 가지 방법은, 소위 촛불혁명을 돌아보는 것이다.
현 정부가 그 덕으로 집권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촛불혁명’의 기저에는 정치ㆍ경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불만이 있다. 즉, 지난 정권들의 올바르지 않은 국정운영으로 정경유착, 비리, 부정부패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고 우리사회가 특권층과 소외계층으로 분열되었다는 인식이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소위 금수저ㆍ흙수저 논의가 비등했고, 지옥 같은 나라란 뜻의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였다. 이는 좌파의 선동이 먹혀들어가기에 딱 좋은 토양이다. 곧 좌파는 "정경유착ㆍ부정부패는 타락한 정치인들과 돈만 아는 자본가들의 결탁에 다름 아니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고유한 현상"이라 주장하고, "이를 척결하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 및 농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의 집권"이라 선동한다.
 
또한, 정부가 노동자·농민을 경제적 강자로부터 보호하고 그들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회정의이고, 그들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인식과 주장이 현 정부 집권의 배경일진데, 언필칭 적폐 중의 적폐는 정경유착·부정부패일 것이다.
 
정경유착ㆍ부정부패가 척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 그리고 관련자 개인들이 처벌 받아 마땅하다는 데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지만,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관련자들을 법적 처벌한다고 적폐가 청산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기본적으로 윤리ㆍ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국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이 높은 윤리ㆍ도덕 수준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가 일어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뿐 아니라 국정책임자들이 자본가의 재(財)와 부(富)를 나누어 누리려고 노동자ㆍ농민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자본가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며 비호하는 데 국력을 오용ㆍ남용하였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만연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경유착·부정부패는 기본적으로 윤리ㆍ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권력집중의 문제이다. 만약 국정책임자들이 모두 성인군자의 높은 윤리·도덕 수준과 책임의식을 갖추고 있다면, 그런 폐해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는 옳다. 그러나 현실은 성인군자가 정치인이 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어느 나라에서나 모든 고위 공직을 성인군자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라마다 정경유착 및 부정부패의 정도에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그 정도가 한편으로는 권력 관련 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정철학에 크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절대군주에 못지 않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
 
우리나라의 권력집중은 매우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리나라 대통령이 절대군주에 못지않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견제 받지 않는 인사권이다.
 
우리 헌법은 국무총리와 감사원장을 예외로 대통령에게 행정부 모든 공무원을 마음대로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개별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자리를 유지하느냐 물러나느냐는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그 결과 행정부의 모든 업무, 특히 대통령의 관심사에 가까운 것일수록 ‘법에 따라’보다는 ‘대통령 뜻’에 따라 수행된다. 행정부 소관사항에 관해 대통령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지위에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기억할 것은 국정원, 국세청, 검찰, 경찰 등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사정기관의 업무이다. 법집행의 일선을 담당하고 있는 이 기관들은 비리, 탈세, 범법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영향력이 큰 인사일수록 더욱 중요한 정보 수집 대상이다. 그런데 그 정보를 누구를 겨냥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거의 전적으로 그 기관들의 결정에 달려있다.
 
이 기관장들의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상기할 때, 그 정보가 대통령의 지시 혹은 기관장들이 추측한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사용될 것임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행정부는 규제라 불리는 법령과 시행규칙 및 세칙을 만들고 유권해석하고 집행하기 때문에 규제에 관해 실질적으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거의 모두 가지고 있는데, 이 규제는 교통ㆍ위생에서부터 금융ㆍ세금까지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 관한 것이므로, 행정부는 민간부문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인이든 기업이든 관련 행정부서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는 상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다.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세무조사를 호되게 받을 수 있고 은행대출이 끊길 수 있으며, 적게는 소방검사나 위행검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민간부문은 규제에 항의할 권한도 없고, 규제가 부당하여도 호소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대통령과 휘하 행정부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인데 이것이 정경유착ㆍ부정부패 등 여러 사회악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이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19세기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 철학자이었던 액튼(Acton)의 경구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크게는 조세ㆍ금융ㆍ무역 등의 정책을 통해, 작게는 행정규제의 집행을 통해 정부가 기업을 흥하게 할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기업이 그 덕을 보려 수단과 방법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청하거나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행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제공하는 편의와 비호를 받는다. 또 많은 일이 순조로이 풀리고 어려운 문이 저절로 열리며 때로는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데 대통령의 측근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대통령의 막강한 힘은, 그 힘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는 자들을 자석처럼 대통령 주위에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막강한 권력을 몰아주고 그 권력이 국민 모두를 위해 공정ㆍ투명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매일매일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정경유착ㆍ부정부패가 우리사회에 만연한 이유이다. 한국인의 윤리ㆍ도덕 수준이 특별히 낮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이익을 남의 이익보다 앞세우는 데 인종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 자본주의 때문도 아니다. 국가가 개인에 대해 사실상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 부패가 훨씬 더 극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논의가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의미하는 것은 과거의 적폐 관련자들을 법적 처벌하는 것으로는 앞으로의 적폐가 청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요구되는 것은 견제 받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 받는 권력으로 바꾸는 것인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권력 분할(separation)과 함께 권력 분산(diffusion)이다. 즉, 입법ㆍ사법ㆍ행정의 삼권 분할에 더하여 각 부의 배타적인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적절한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삼권이 분립되어 있고 어느 정도의 권력분산의 장치들이 도입되어있다. 예컨대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의회는 대통령, 법관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해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견제장치가 결여되어 있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국무총리와 감사원장을 제외한 행정부의 모든 공무원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무력화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일이고 감사원은 행정부의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행정부 업무수행에 관해 배타적인 권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견상으로는 삼권이 분립되어 있으나, 삼권분립이 추구하는 삼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 제도적 결함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의 국무총리 및 감사원장 임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적어도 행정부의 장ㆍ차관 그리고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국가정보원 기관장의 임명에 대하여 국회의 인준을 요구하는 헌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 규제 관련 행정부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 역시 견제 받는 권력으로 바꾸어 민간부문과 정부 사이에 힘의 균형이 균형을 찾도록 해야 한다.
 
가령, 피규제자의 제소로, 규제의 합목적성, 효율성, 공정ㆍ투명성을 심의하여 구속력 있는 폐지 내지 개정의 판결을 내리는 규제심판소의 설치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제도개혁 노력 없이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은 지속되고, 정치권과 사회 일부 인사와의 유착관계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부정부패, 곧 적폐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