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
  'Amnesty(앰네스티)'?

  영어를 12주 만에 끝내 버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1997년 3월 영국으로 건너갔다. 조금 긴장했지만, 육군 병장 정 병장은 정신 무장하고 첫 수업을 기다렸다. 영국인 선생님이 들어와서 수업에 대해 설명한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교과서가 없단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애국가를 4절까지 달달 외우던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다. 수업 시작하자마자 영어 선생님이 지나가며 어깨를 툭 친다. 벌떡 일어나서 교과서 1과부터 12과까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큰 소리로 씩씩하게 외운다. 중간에 버벅거리는 학생은 조용히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선생님의 '사랑의 매'를 기다린다. 나는 한국에서 그렇게 영어를 배웠다. 그런 나에게 교과서 없는 수업은 허술해 보였다, 처음에는...

  영국인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 대신 이것저것 어디서 복사해온 것들을 나눠줬다. 어떤 때는 신문을 복사해 왔고, 어떤 때는 책에서 뭔가를 복사해 와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토론을 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교과서로 수업하지 왜 낱장 복사지를 주면서 자꾸 토론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낱장으로 주니 관리하기도 귀찮았다.

  그런데 '고여있는 교과서'가 아니라 최신 자료로 토론하다 보니 어학원 밖 다른 영국인들과 얘기할 때도 뭔가 얘깃거리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몰랐다가 그렇게 영국에서 처음 접한 단어 중 하나가 'Amnesty(앰네스티)'다. 참고로 국제앰네스티는 세계최대의 인권단체로, 150개국에서 인권 보호 활동을 하며 회원 수는 70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는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공식 출범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겠다며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인권위는 최근 문재인 정부가 그 위상을 격상시키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좀 궁금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현재 인권위가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아나?

  최근 내가 겪어본 인권위는 우리동네 주민센터보다 훨씬 덜 친절하고 훨씬 덜 성실했다. 인권위에 민원을 제기하면 민원인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이런 건 '깜'도 안 되니 그냥 취하하라고 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정도 느낌을 받았다면, 학교 근처도 못 가보신 내 부친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인권위 직원 문턱이나 넘을 수 있을지.

  나는 문재인 정부가 인권위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고 우리 국민의 인권이 두 배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위는 한 사람이 왜 가슴 졸여가며 조심스레 인권위 문을 두드렸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권위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을 인권위 스스로가 찾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인권은 무슨... 그냥 사는거지'가 계속될 것이다.

  그게 내가 2017년 우리나라 인권위를 직접 겪어본 뒤에 내린 결론이다.

2 June 2017
정채관 박사(교육학)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BEng(Hons) Birmingham MSc Warwick EdD Warwiick Cert Oxford
Email: ck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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