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박사학위 유학을 위해 서울에 있는 영국대사관에서 3년짜리 학생비자를 신청하였다. 결과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짜리 학생비자가 아니라, 2007년부터 2021년까지 14년짜리 학생비자가 나왔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내가 위조한 것도 아닌데 대사관에서 그렇게 찍어서 준 학생비자 덕분에 영국에 입국할 때마다 매우 귀찮았다.

  버밍엄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할 때 입국심사관이 이상하다며 저기 가서 있으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입국심사관들이 모여 확인한 후에 이상이 없음을 발견하고는 나중에 서울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1년 뒤 미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다녀오는 길에 런던 공항에서도 같은 일이 생겼다. 내가 봐도 이상하다. 14년짜리 학생비자라니.

  영국에서 유학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번 돈에 대한 세금이 꼬박꼬박 나갔다. '인간은 세금과 죽음, 이 두 가지를 절대 피해갈 수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대로, 영국은 특히 세금이 투명했고, 세율도 높았다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국가보험으로도 꾸준히 세금이 나갔다.

  돌이켜보면, 14년짜리 학생비자는 내가 그동안 세금을 꾸준히 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보통 10년 정도 영국에 산 한국 사람들은 영국영주권을 신청하고, 그다음 영국시민권을 신청한다. 가끔 사람들이 나보고 왜 영국영주권이나 영국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냐고 물을 때마다, 내 나라가 있는데 왜 남의 나라 사람이 되려하냐고 되묻는다.

  이 나라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나라 세우려고 조부께서 독립운동하셨고, 이 나라 지키려고 백부께서 전쟁에 참전하셨다. 경찰로 순직하신 처조부도 있다. 사람들이 그냥 영국에 살지 왜 돌아왔냐고 물으면, 현충원에 계신 이 나라 세우고 지키는 데 목숨 건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 나라 키우는 일 하러 돌아왔다고 대답한다.

  나는 유학 갔다 온 사람 중에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잘 몰랐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중에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잘 몰랐다. 우리집 사람들은 현역으로 군에 다녀오는 게 당연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게 상식이었고, 내가 영국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목전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식적인 사람이면 좋겠다.
 
18 April 2017
정채관 박사(교육학)
BEng(Hons) Birmingham MSc Warwick EdD Warwiick Cert Oxford
Email: ck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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