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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기자/조선DB

  거의 30년 전 본 MBC 드라마「완장」을 기억한다. 이 드라마를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조형기의 연기도 연기지만, '완장'으로 상징되는 보잘 것 없은 권력에 기대어 '완장질'하는 사람을 살면서 실제 만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완장질을 그렇게 욕하던 사람이 막상 자기가 완장을 차면 전임자보다 더 나쁜 완장질을 한다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다소 역량이 부족해보였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 적합해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 변화가 없으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진다. 문제는 역량이 부족한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또는, 전혀 모르는 척하고) 남 탓만할 때다.

  영국에서 유학한 덕분에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브렉시트에 대해 묻는다. 영국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영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에서 떠드는 것처럼 그렇게 나라 전체가 들썩거리는 건 아니란다. 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정부가 독일군의 대규모 공습에 대비해 만든 'Keep Calm and Carry On(진정하고 하던 일이나 해라)' 포스터가 생각났다. 그들은 그동안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국이 망할 것 같은가? 영국에서 10년 넘게 그들과 직접 부딪치며 경험한 바로는 그럴 공산은 적다.

  2009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대학원생부터 노교수까지 영국인들 30명 정도가 둘러 앉아 특정 주제를 가지고 토론했다. 나이와 경력을 떠나 각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자기 목소리를 냈다. 노교수의 권위에 눌린 침묵과 위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에 어쩌다 완장차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 권위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봤다.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완장을 차고 나니까 변했다. 그 완장, 천년만년 차고 있을 것 같나? 아니면, 물 들어올 때 노저으라고 순간이나마 본인이 그렇게 욕하던 완장질을 자기도 실컷 하고 싶었던 것이었던가?

  우리 주변에 어설픈 완장질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묻고 싶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면서까지 그 보잘 것 없는 완장에 목숨 걸고 있는가, 그대?

7 July 2016
정채관 박사(영어교육·응용언어학)
BEng(Hons) Birmingham MSc Warwick EdD Warwiick Cert Oxford
ck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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