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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터지게 만드는 영화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터질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영화는 2002년 월드컵 4강전이 벌어지던 2002년 6월29일, 서울시내 등 곳곳에서 붉은 악마들의 응원전이 펼쳐질 때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헬기들이 바쁘게 부상병들을 옮겨 나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 참수리 357정으로 전입오는 것으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 전반부는 밋밋하다. 새로 전입온 부대에서 겪는 작은 애환들을 겪으면서 성장해 가는 상병 박동혁, 깐깐한 원칙주의자지만 속정이 깊은 정장(艇長) 윤영하 대위, 병사들을 배려해 주면서 장교와 사병들 간에 가교역할을 해 주는 인정 많은 한상국 하사....
 
군대생활을 해 본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상황들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군 생활이나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특별히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소 지으며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아쉬운 것은 이 과정에서 박동혁(이현우 분), 윤영하(김무열 분), 한상국(진구 분) 외에는 눈에 띠는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조연(助演)은 물론 단역들까지도 살아 숨 쉬는 탄탄한 캐릭터들이 극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극 전개 상 중요한 인물은 아닌데도, 왠지 그 사람 때문에 극 전체가 꽉 차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거기에다 감초 역할을 해 주는 조연, 단역들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부장 이희완 중위, 조천형 하사, 황도현 하사, 서후원 하사 등에게도 개성 있는 캐릭터를 부여하여 극을 받쳐나가게 했으면 참 맛깔난 영화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이 전반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 정권 시절, 북한과의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명백한 북한의 도발징후마저 외면하는 당시 군 수뇌부의 모습은 비교적 잘 그려졌다. 반면에 전투장면은 혼란스러웠다. 포성과 화염, 비명, 절규, 선혈.....
그 와중에 배우들의 ‘연기’가 잘 안 보이는 것은 아쉽기 짝이 없었다. 분명히 예견해 왔고 상부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해 왔지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상황에 직면하게 된 지휘관 윤영하 대위나, 초전에 정장이 전사한 후 다리 하나가 절단된 상태에서 지휘를 해야 했던 부장(副長) 이희완 중위, 그리고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생전 처음 ‘전쟁’을 치러야 했던 부사관과 수병들....
 
감독은 아쉽게도 그들이 느껴야 했던 중압감과 고민을 하나하나 포착해서 세련되게 그려내지는 못한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통해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이 보기에는 어설프게 느껴질 만한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전쟁이란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이 어려움 속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부하들을 지휘하고, 부하들은 제 위치에서 용감하고 침착하게 제 역할을 다 해내고, 그래서 희생은 있었지만 적을 끝내물리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진짜 전쟁은 저렇게 정신없고, 지휘관이고 병사들이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총탄에 쓰러지고, 비명과 절규만이 난무하고, 허둥대고 무서워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며 응전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물론 감독이 그런 것을 충분히 고려해서 연출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앞에서 언급한 한계들 때문에 한동안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못했다. 솔직히 <조선일보> 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들도 많이 울더라는 보도를 보고, 눈물을 쏟을 각오를 하고 갔다. 하지만 장병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에서도, 정장 윤영하 대위가 부상을 당한 몸으로 전투를 지휘하는 장면에서도, 이미 한쪽 다리를 잃은 부장 이희완 중위가 지휘권을 인수하고 부하들을 지휘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도 누선(淚腺)은 그렇게 쉽게 자극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키를 놓치지 않고 싸우는 한상국 하사가 아내의 사진을 보면서 ‘너 참 이쁜데, 이렇게 이쁜데....’(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음)라고 중얼거리는 대목에서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아 훌쩍이고 있는 아내 생각이 나서였다. ‘아마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릴 사람도 아내겠지’ ‘아마 그 순간, 아내와의 즐거웠던 추억, 아내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정신없이 흘러내렸다. 만신창이가 된 아들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박동혁 상병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울었다. 실종된 한상국 하사의 시신을 찾기 위해 잠수사들이 바닷 속을 헤매는 장면을 보며 울었다. 해군 의장대원들이 조총(弔銃)을 쏘는 장면에서 울었다.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당시 기록 영상물들을 보며 울었다.
 
김대중이 월드컵보러 갔다가 귀국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윤영하 대위의 아버지 윤두호씨(예비역 해군대령)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에서 울었다. 윤두호씨가 아들의 하얀색 해군 정복을 끌어안고 우는 장면에서 울었다. 아들이 끝내 숨을 거두자 의사들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사정하다가 심폐소생술을 하듯이 아들의 가슴팍을 눌러대다가 쓰러져 오열하는 박동혁 상병의 어머니 모습을 보며 울었다. 나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도 계속 울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그 어린 것들이 불쌍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그들은 20대 초중반의 ‘어린 것들’이었다.
 
그 어린 것들을 김대중은 차단 기동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교전수칙을 만들어 죽게 만들었다. 가족들이 국군수도병원에서 절규하고 있을 때, 박동혁 병장이 살고 싶다고 울부짖고 있을 때, 김대중은 월드컵 구경한다고 일본으로 갔다. ‘반역자’라는 욕이 나왔다. ‘6.15선언으로 남북간 평화가’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일삼는 자들, 그 병사들이 피로 지킨 바다를 '서해평화수역'인지 뭔지로 포장해서 북에게 내주려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영화속 설정과는 달리 벙어리가 아니다)는 당시 기무사에서 유가족들을 사찰했다고 말했다. 아마 노무현 정권 시절의 일일 것이다.

문득 노무현 정권 시절, 애국집회에 나와 단상에 섰던 황도현 하사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단상에 올라선 그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도현아, 도현아....”라며 꺽꺽거렸다.

어디 황도현 하사의 아버지뿐이랴? 윤영하 대위부터 박동혁 병장까지, 전사자들의 부모들은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핍박한 자들....천벌을 받을 자들이다.
 
이 영화를 본 분들 중에는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을 아끼는 분들이 있었다. ‘애국심으로 볼 영화’라는 평이었다. 그걸 보면서 ‘영화가 차마 못 볼 수준의 졸작이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잘 만든 영화였다.
솔직히 요즘 영화는 ‘돈’으로 만드는 것이다. 특수효과도 ‘돈’으로 하는 것이고, 내면의 심리묘사까지 잘 해내는 연기파 배우도 ‘돈’으로 불러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요즘 같은 시절에 그만한 돈으로 이만한 영화를 만든 것만도 용한 것이다.
 
더욱이 현실비판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인정받고, 그런 영화에 얼굴을 내밀어야 ‘개념배우’소리를 듣는 영화계 풍조 속에서 기꺼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김학순 감독, 출연 배우들, 특별출연한 송재호, 이청아씨 등에게는 고맙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십시일반 성금을 낸 시민들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앞에서 이 영화의 부족한 점을 지적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가슴에 불을 지르는 영화다.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영화다. 그럼 볼만한 영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