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잠행(潛行) 시위가 장기화하고 있다. 자당(自黨) 대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선거대책위원회 인선(人選) 과정에서 윤 후보 측과 갈등을 빚은 게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김종인 불발’과 ‘이수정 영입’이 뇌관(雷管)으로 작용했다. 이 대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을 요구했고,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영입은 반대했다. 그의 뜻과 완전히 다른 인선 결과였다. ‘이준석 패싱’ 논란은 가속화됐다. 이 대표의 잠적(潛跡)은 이 같은 배경에서 결행(決行)됐다. 

지난달 29일 저녁 초선(初選) 의원들과 격한 술자리를 가진 이 대표는 그날 밤 페이스북에 ‘당무(黨務) 거부’를 알리는 의미심장한 글을 쓰고 휴대폰 전원을 끈 채 지방으로 향했다. 다음날 첫 도착지는 부산, 모처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회동했다. 1일에는 사상구에 위치한 장제원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직원들과 격려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했다. 장 의원은 ‘윤석열 측근’으로 꼽히며 선대위의 ‘막후 실세(實勢)’로 분류된다. 같은 날 이 대표는 순천·여수로 넘어갔고 오늘(2일) 다시 제주로 향했다. 제주4·3유족회와 오찬(午餐) 간담회를 가진 뒤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잠행을 한다기보다 지역을 돌며 계획된 대로 행보를 하고 있다. 이것이 당무 거부라는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후보가 선출된 이후 당무를 한 적이 없다”며 “후보의 의중에 따라 사무총장 등이 교체된 이후에 저는 딱 한 건의 보고를 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제가 (윤 후보에) 뭘 요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굉장히 심각한 모욕적인 인식”이라며 “(캠프) 핵심 관계자의 말로 언급되는 여러 가지 저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들이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 대표 사퇴설이라든지, 특히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인사에 대해 (윤 후보는)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고, 알고 있다면 인사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1일 이 대표를 순천에서 만난 천하람 변호사는 2일 ‘MBC 라디오 –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김종인 전 위원장 (영입) 불발에 굉장한 불만을 갖고 있다”며 “이 대표는 방향성과 인선에 관한 문제 때문에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잠적 사태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일단 관망(觀望)하는 모양새다. 그는 “무리하게 연락하지 않겠다. 자세한 (잠적) 이유는 당무에 복귀하게 되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것 같다”며 “(이 대표가) ‘리프레시’하기 위해 (지방에)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윤 후보 주변에서는 이 대표의 ‘돌발 행동’에 대한 경계론도 나왔다. 최근 윤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신평 변호사는 지난달 30일 “이 대표의 잠행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알 수 없다. 그를 보고 있으면, 얼음이 얇게 언 내를 건너는 듯 조마조마하다”며 “그가 말하는 모습을 보면, 언어 구사는 다양하고 현란한데 그 말이 허공을 향해 일방적으로 내뱉는 감이 없지 않다. 이제는 제1야당의 당 대표라는 막중한 위치에 있는데,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책무의 무게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예찬 전 윤석열 캠프 청년특보는 “지금처럼 취중 페북으로 폭탄 발언을 하고, 갑자기 칩거(蟄居)해서 부산-순천을 오가는 행보를 하는 것은 정권 교체를 목전에 둔 제1야당 당 대표다운 행동이 아니다”라며 “당초 형이 구상했던 그림과 다른 방향으로 대선이 흘러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후보의 뜻을 존중하며 정권 교체의 밀알이 되어야 할 조연이다. 이번 한 번만 형(兄)의 정치에서 주인공 자리를 후보에게 양보할 수 없느냐”고 지적했다.

정가(政街)에서는 제1야당 대표의 ‘취중 돌출 행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단초가 된 당시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옥새(玉璽) 들고 나르샤’ 사태가 연상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패싱 논란’ ‘갈등 격화’가 이 대표의 심기 불편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나,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 대표의 ‘기습 잠적’ 같은 돌발 행동은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실제로 현재 여론조사 중에는 윤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지지율이 밀리는 결과도 나와 있다. 1일 리서치앤리서치가 채널A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조사 기간 지난달 27~29일,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내년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이재명 후보가 35.5%, 윤 후보가 34.6%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당 대표의 예기치 못한 행보는 당의 대선 준비 태세에 혼란을 줄 수 있고, 국민들에게는 당 내홍(內訌)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후보의 여론 규합에 지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당 대표 자질론’이 불거지면서 심하게는 ‘탄핵론(彈劾論)’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13·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해옥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2일 윤 후보를 포함한 상임고문단 오찬 회동에서 “이 대표 행동은 해당(害黨) 행위라고 생각한다. 제명(除名)해야 한다”며 “당원 소환제를 해서 탄핵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黨舍) 앞에서 이 대표 탄핵 촉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재 국민의힘 홈페이지 ‘할 말 있어요’ 게시판에는 ‘이준석 사퇴하라’ ‘이준석 없으면 선거운동 못 하나’ ‘무책임하고 못 배워먹은 당 대표 필요 없다’는 등의 비판글이 쇄도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장성민 전 의원은 “나는 헌정(憲政) 사상 이런 야당을 본 적이 없고, 이런 야당 대표를 만난 적이 없다. 이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정권 교체를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일도 안 하면서 왜 당 대표 자리는 꿰차고 있는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