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조선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 전 이사장의 상고심에서 "공산주의자 발언은 고 전 이사장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적 인물인 문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이나 행적 등에 관해 자신의 평가나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할 뿐,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앞서 2심은 '공산주의자' 발언이 '허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고 전 이사장은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4일 보수 단체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향해 "부림사건 변호인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발언해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부림 사건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영장 없이 체포돼 고문받고 기소된 사건이다. '부산의 학림(學林) 사건'이라며 '부림 사건'으로 불렸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최고 징역 7년형까지 선고받았고 이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후 2014년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문 대통령은 부림 사건 재심사건의 변호인이었고, 고 전 이사장은 부림사건 수사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 수사검사였다.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2017년 7월 고 전 이사장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18년 8월 1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은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평가한 여러 이유를 제시하고 있고, 그에 기초해 (문 대통령에 대해) 본인(만의) 진단을 내린 것"이라며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으로 모멸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공적인 존재에 대한 어떤 표현이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고, 이 공적인 존재가 클수록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며 "의혹이 있다면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작년 8월 2심은 "'공산주의자 발언'은 단순한 의견표명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구체화된 허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며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날 2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비판과 의혹의 제기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한 비판과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서 이를 극복해야 하며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며 "고 전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은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어느 한 개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는 그 개념의 속성상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고, 공산주의자로서의 객관적·구체적 징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 이상, 그 평가는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이를 증명이 가능한 구체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북한과 연관 지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다른 구체적 사정에 대한 언급이 없는 한,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의 발언 경위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공적 인물인 문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견교환과 논쟁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하고, 문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여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