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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복원된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서울에는 다섯 개의 큰 궁궐이 있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이 그것이다. 궁궐은 아니지만, 궁궐 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 종묘가 창덕궁 권역에 속해 있었고, 경복궁 서쪽과 경희궁 북쪽에는 사직단이 있었다.
 
현재 궁장(궁궐 담장)으로 쳐진 경복궁의 부지만 해도 중국 자금성의 약 60%에 해당한다. 여기에 실제 궁궐 부지였던 청와대 일대와 궁궐 주변에 둘러싸고 있던 각종 궐외각사와 6조의 관아, 별궁, 군사시설까지 합하면 우리 경복궁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아마 5대 궁궐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가정하면, 자금성이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울 뻔 했다. 그러니 궁궐의 크기에 별로 주눅 들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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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의 한성부 지도에 표시된 5대 궁궐과 종묘. 우리 궁궐은 서로 맞닿아 있는 상황에 따라 크게 3개 권역으로 나뉠 수 있다. 조선시대 가운데 경복궁을 법궁으로, 경희궁과 창덕궁·창경궁 등은 이궁의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덕수궁이 정궁이자 황궁 역할을 했다. 경희궁은 서쪽에 있다고 서궐, 창경궁과 창덕궁은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했다. 지도에 표시 되지 않았지만,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는 운현궁이 있다.
 
 5대 궁궐은 요즘에는 빌딩숲이나 도로로 인해 구분이 비교적 쉽다. 하지만 구한말까지만 해도 서로 담장이나 숲, 후원, 산으로 맞닿아 있어 드넓은 궁궐 부지를 명확하게 구분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창경궁 후원격인 함춘원(경모궁)이 현재의 서울대병원 자리에 있었다. 그 부지가 현재의 덕수궁보다 크다. 게다가 창덕궁은 종묘와 이어졌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사저였던 운현궁은 경복궁과 종묘 사이에 있다. 이렇듯 창덕궁·경희궁·경모궁 문묘·종묘만 연결해도 그 크기가 자금성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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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과 경운궁을 잇는 홍교(1902년). 다리 아래로 전차가 다닌다. 

5대 궁궐 외에 인왕산-경복궁-안국동 쪽에 별궁 즐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별궁도 수없이 존재했다. 인왕산 안쪽에 선희궁과 경우궁을 비롯, 현재의 경복궁 서편을 중심으로 자수궁, 창의궁, 어의궁, 어의동 본궁 등이 있었다. 종로와 안국동 쪽에도 수진궁, 용동궁, 안동별궁 등이 있었다. 이들 별궁과 궁외에 있던 여러 전각 부지만 합해도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궁궐을 이야기할 때, 흔히 궁장(궁궐 담장)을 기준으로 궁궐의 담장 안쪽을 지칭한다. 하지만 기능이나 여러 가지 부대시설과 업무 공간이 궁장밖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복궁의 경우, 공식적인 영역은 남쪽의 광화문에서 북쪽 신무문까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재의 청와대 자리와 비서실, 경호실 자리가 모두 궁궐에 속하는 영역이었다. 이곳은 후원(상림원), 농사일 관장(경농재), 군사훈련(경무대) 등을 위한 다양한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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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에 경복궁 부분을 확대해보면, 궁궐 담장 주위로 종친부와 사간원 등의 관청이 가득하고, 광화문 6조 거리에도 각종 관청이 가득 들어서 있다. 경복궁 서측에 제법 큰 창의궁(1908년까지 존속)이 보인다. 경희궁 앞에도 몇 개 관청이 보인다. 궁장(궁궐담장)으로 둘러싸인 궁궐 본토 외의 후원과 관아, 궁궐에 딸린 숲, 병영터, 별궁들에 대한 별도의 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궁궐에 미처 다 들여놓지 못한 공간들인 ‘궐외각사’가 궁궐 둘러싸
 
이게 다가 아니다. ‘궐외각사’라고 해서, 궁궐에 미처 다 들여놓지 못한 관아의 업무공간을 궐밖에 두었다. 경복궁의 동쪽 건춘문과 서쪽의 영추문 일대의 궁장 밖에는 궐외각사에 소속된 각종 관청이 있었다. 왕실족보 관리 기관인 종부시, 공주·옹주·군주(郡主)·현주(縣主) 등과 혼인한 부마(駙馬)에 관한 일을 관장했던 의빈부를 비롯, 중추부, 종친부, 의금부, 사헌부, 사간원, 내시부, 사직서, 체부청, 전의감, 한성부, 돈녕부, 비변사, 승문원, 소격서 등의 관청이 궁궐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특히 경복궁 동쪽과 안국동 쪽에 있는 각종 관청은 창덕궁과 가교 역할을 했다. 광화문에서 현재의 광화문 사거리까지 세종로 거리는 잘 알려진 6조 관아가 들어서 궁궐과 한몸처럼 움직였다.
 
5개 궁궐이 나뉘어진 듯 하면서도 하나인 듯 ‘조화’
 
우리 궁궐의 특징은 정궁인 경복궁을 제외하고는 산세와 지형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지어졌다. 그래서 마치 5개의 궁궐이 나뉘어진 듯 하면서도 하나인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현재 서울시청 옆에 있는 경운궁은 북쪽으로는 경희궁과 연결되어 있었다 대한문 앞쪽 소공동 환구단 자리는 원래 남별궁이 있던 곳으로 사실상 경운궁 영역에 속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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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인 1946년 미군정청이 찍은 경복궁의 모습. 마치 불도저로 밀어버린 듯 깨끗하다. 조선총독부 건물만 덩그렇게 보이고, 경회루와 근정전 외 남아 있는 전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서울시청을 포함하는 덕수궁에서 6조 거리, 경복궁, 경희궁, 사직을 크게 한 덩어리로 보면, 사대문 중앙과 서북쪽을 거의 다 차지하는 범위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경희궁(서궐)과 덕수궁은 사실상 연결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러시아 대사관에서 언덕만 내려오면 바로 경희궁이다. 구한말에는 이 두 궁 사이에 홍교라는 다리를 놓아 실제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경희궁은 다시 북쪽문을 통해 사직단과 이어졌다. 경희궁과 경복궁 사이 사직단 북쪽에는 광해군이 지은 인경궁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경희궁과 경복궁 사이의 넓은 부지에는 각종 별궁과 정부 시설,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경희궁 정문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6조거리를 통해 경복궁과 연결된다. 덕수궁 북쪽 현재 경기여고 터에는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신 선원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바로 길만 건너면 6조 거리를 통해 경복궁과 연결됐다.
 
이밖에 중구 저동에는 영희전이 있었다. 이는 태조·세조·숙종·영조·순조 등의 어진을 모셨던 큰 규모의 전각이 있었다. 영희전 전각은 1900년에 창경궁 앞 경모궁터로 이전했다.
<2편에 계속>
 [이상흔 기자]